페리클레스와 아우구스투스의 공통점

by 김대일

한때 로마 선풍을 일으켰던 시오노 나나미 저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초판이 1995년에 나왔으니 어지간히 오래되었음에도 3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밌다.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책장을 정리하다가 시리즈 중 1~3권이 눈에 띄어 읽고 있다. 역사책이든 역사소설이든 서두는 하나같이 지루하고 심심하다. 찬란한 역사가 이뤄지기 위한 태동부터 아는 건 굉장히 중요하지만 스펙터클하긴커녕 너무 잠잠해 독서 진도가 영 신통찮다. 『로마인 이야기』 제1권도 다를 리 없어서 중간에 그만 읽을 결심을 한 했던 건 아니지만 오래 전에 읽던 때와는 달리 군데군데 뒤통수를 갈기듯 꽂히는 대목 때문에라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로마가 건국해서부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오백 년을 정리한 제1권에서 깎새가 가장 주목했던 대목은 제1권에 대한 저자의 맺음말이었다. 로마 초기 오백 년 역사를 기술한 일차 사료와 그걸 남긴 역사가의 면면에 관한 게 주요 내용인데 네 명이 등장하는 역사가 중 세 명이 고대 로마인이 아닌 고대 그리스인이었다. 이들이 쓴 로마의 역사서가 로마 연구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연구자들의 저서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온,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을 빌면 '마치 맨살에 착 휘감기는 비단옷처럼' 다가온 이유를 풀어쓴 부분은 인상적이다 못해 센세이셔널했다. 기실 요즘같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안목을 높이는 길라잡이 역할로 충분하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고 보니 시리즈를 완독하지 않았어도 완독한 것이나 다름없이 넉넉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저자가 밝힌 이유 네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로마가 융성한 원인을 정신적인 것에서 찾지 않은 세 사람의 태도다. 로마 당사자들의 정신이 건전해서 융성했다가 타락해서 쇠퇴했다는 식의 논법이 아닌 융성의 원인을 당사자들이 만들어낸 제도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서를 기술한 그리스인은 기독교가 보급되기 전에 태어나 기독교의 윤리나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예수는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했다. 시오노 나나미 역시 믿음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왜냐고 묻는 자세를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훌륭한 것은 알지만, "가난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가난에 안주하는 것은 수치다"라는 페리클레스의 말에도 공감한다고 했다. 기독교의 가치관을 통해 로마를 보아서는 기독교를 몰랐던 시대의 로마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다음에 나열할 셋째 이유는 둘째 이유와 맥락이 일견 통하는 건 물론이고 깎새가 가장 주의깊게 읽었던 대목이다. 책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보겠다.


셋째, 이것 역시 프랑스 혁명을 모르고 죽은 그 세 사람한테는 당연한 일이지만, 프랑스 혁명이 드높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념에 이 세 사람은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념의 방해를 받지 않으니까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그만큼 쉬워진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따위의 생각이 강해지면, 그것과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체제에 아무리 좋은 면이 있어도,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체제라는 이유만으로 그 좋은 면에는 눈을 감아버리게 되는 법이다. 아니, 처음부터 그쪽에는 아예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페리클레스와 아우구스투스를 같은 위치에 놓고 칭찬했다. 영명한 지도자가 다스렸을 때의 국가가 얼마나 행복하게 운영되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로 그는 이 두 사람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두 사람을 같은 위치에 놓고 논하는 학생이 있다면, 역사 교사는 주저없이 낙제점을 매길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기수이고, 아우구스투스는 제정 로마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혁신과 보수를 같은 위치에 놓고 생각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이유에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고상한 이념을 일단 제쳐놓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테네 민주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 것은 페리클레스가 훌륭하게 지도했기 때문이고, 로마 제정이 '팍스 로마나'(로마의 지배에 의한 평화)를 쌓아올린 것은 아우구스투스 덕택이다. 만민의 행복에 이바지했다는 점에서는 민주정도 제정도 사라지고, 오직 선정善政만이 남는다. 고대인도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닐까.

덧붙여 말하자면, 페리클레스에 대한 고대의 평가는 그가 뛰어난 지도자라는 것이었고,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였다. 나 자신은 프랑스 혁명을 거친 현대에 태어나긴 했지만,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소리 높이 외칠수록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실현에서 멀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

이 이념을 드높이 외치고 열심히 추구한 민족은 이 이념을 실현하지 못했고, 얼핏 보기에 반대되는 생활방식을 선택한 민족은 비록 완전치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 이념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요즘 20세기 말의 이 혼란은 프랑스 혁명 이념의 자가중독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 김석희 옮김, 한길사, 2008, 291~292쪽에서)

마지막 네째는 문제의식의 절실함이다. 놓인 처지는 달랐어도 세 사람의 그리스인은 고도의 문화를 이룩한 그리스가 쇠퇴한 반면에 로마는 계속 융성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물었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일치했다.

네 가지 다 수긍이 가지만 특히 세째 이유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깎새한테 무척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작금의 현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지. 이를테면 균형감각을 탁월하게 가져야 할 시점이 아닌지 하는. 이는 이 시대의 지도자는 과연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된다.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실사구시적 관점으로 현상과 현실을 바라볼 줄 아는 자, 극단성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실용적 줄타기에 능한 자, 케케묵은 이념을 일단 제쳐두고 만민의 행복에만 이바지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리더로 우리의 역사에 새겨 넣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시오노 나나미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20세기에 이어 여전히 혼탁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대 그리스 역사가 세 사람이 시사하는 바는 의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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