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 잡상인이 구시대적 유물이 된 지는 꽤 오래 됐다. 정숙을 바라는 승객한테는 민폐였을 그들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 주체로서 그들 나름의 삶을 영위했을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우승미가 쓴 『날아라 잡상인』(민음사, 2009)은 사회적 약자이기도 한 그들의 애환과 연대를 따뜻하게 그린 장편소설이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노老작가가 캐치한 전철 안 헤식은 풍경 묘사는 깎새에게 있어서만큼은 동경하면서 사사해야 할 중요한 글짓기의 본보기로 오래도록 자리매김하고 있다. 거기서도 전철 안 잡상인은 등장한다. 노작가 손으로 빚어낸 풍경은 따뜻하고 유쾌한 기조가 역력한 소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기는 하나 상황을 해학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품은 가히 일품이다. 노작가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어떻게 된 노릇인지 전동차에서 페티 페이지의 <테네시 왈츠>를 듣는 기회가 요즘 들어 잦다.
DVD 장사 덕이다. 호객을 위한 그의 시그널 뮤직인 셈인데, 볼륨이 애초에 높다. 전주前奏없는 가창이 또 즉각적이어서 사람들의 무료를 깨기 십상이었다. 노래방이 생기기 전의 방석집에서나 행세하던 묵직한 음향 장치, 일명 소리통을 밀고 다니는 행상이 조금은 별나 보인다.
노래는 그러나 시작이 끝이었다.
‘아이 워스 댄싱 마이 달리 / 투 더 테네시 왈츠’에서 곧 동강이 나고 만다. 소음騷音으로 몰릴까 무서워 소음消音한 것이다.
그 바람에 같은 노래 같은 소절만 매양 반복되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어쩌겠는가. 맛보기 멜로디로 승객의 이목을 끈 젊은이는 쫓기듯 가쁜 육성을 가다듬어 회상의 리바이벌곡을 열심히 팔았다. ‘짜장면 시키신 분’은 말씀하시라는 투로 뜨내기 손님들의 매기買氣를 부추기며 재빨리 전후좌우를 살폈다.
승객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한낮 지하철의 헤식은 풍경이 그런다고 얼마나 흔들릴까.
그 시간대에는 특히 노년층이 많거니와 반응은 대체로 시들했다. 재財테크가 있으면 노老테크도 있다고 했는데, 후자의 그것은 보수적 거조擧措에 중심을 둘 수도 있으므로 표현이 더디고 은근하다. 한편 엉큼하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들이당짝 왕년의 정서를 들쑤시다 만, 조각난 곡조에 불만을 품지 말란 법 없다. 누구는 귀가 솔깃하다 못해 감질이 나고, 누구는 오수를 방해 받아 시큰둥할지 모른다. (최일남,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문학의문학, 2010, 7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