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감각의 절반 이상은 맥락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김찬호는 그의 저서 『유머니즘』(문학과지성사, 2018)에서 밝혔다. 말인즉슨 일정한 시공간에 있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들 간에 쌓인 신뢰와 공감이 토대가 되어야만 유머가 눈치껏 발휘되고 눈치껏 웃을 수 있는 우연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저잣거리 식대로 풀어쓰자면, 분위기 파악해서 요령껏 늘어놓아야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자빠지는 줄 직감한다, 뭐 그쯤.
문제는 웃기는 소리를 들었을 당시에는 배꼽 빠지게 빵 터졌는데 다른 데서 써먹어야겠다며 그것들을 모아 기록해 놓으면 유통 기한 넘긴 식품처럼 헤식은 까닭이 타이밍이란 생명력이 다해서이지 싶다. 다음에 나열한 일화는 들었을 당시에는 환장했었지만 써놓고 보니 피식거리지도 않는다.
1.
이야기는 감천항에 가야 러시아인을 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구 근처에서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포장마차에서 친구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 러시아 남자가 되게 친한 척 굴더래. 전작 탓에 겁대가리일랑 던져 버린 지 오래인데다 술에 찌들어 얼굴이 불그죽죽한 러시아 남자도 만만찮았는지 서로 말도 안 통하면서 의기투합해 잘도 주거니받거니 했것다.
근데 갑자기 서로 주먹다짐을 해대더니 결국 유치장 철장 신세가 되어 버렸어. 그 일 이후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하고 싸울 건 뭐냐고 친구를 나무랐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찼어.
- 한 잔 들어가니까 개새키소새키 하는 러시아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로스케 녀석 나하고 이념이 영 안 맞아. 그 생각 고쳐 먹으라고 충고를 해줬는데도 계속 억지를 부리는 거야. 그래서 홧김에 선방 날리다가 그만.
2.
한 선배가 자랑했다.
- 2003년 우리나라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영화 한 편이 개봉돼. 누적관객수 526만 명으로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인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영화에 출연한 송강호, 박해일 등은 한국영화를 선도할 배우로 주목받았지만 그 배우들 이름보다 더 귀에 착착 감기는 다른 이름으로 나는 그 영화를 기억해. 살짝 정신이 가출한 듯한 백광호(박노식 분)라는 살인 용의자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향숙이 이쁘다"는 영화가 히트하면서 덩달아 유명해졌고 유행까지 타게 되지. 영화가 개봉하던 해, 개그콘서트에서는 영화를 패러디한 <걸인의 추억>이라는 코너가 등장해서 영화 속 백광호를 흉내내면서 매주 빠지는 법 없이 향숙이 이쁜 걸 홍보해댔어. 나야 초등학교 때부터 향숙이 이쁘단 걸 잘 알고 있는 터였지만 이렇게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주니 그저 황감할 따름이었다.
그래, 같이 사는 여자 이름이 향숙이다. 정작 본인은 제 이름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 덕에 이쁜 아내 둔 나만 희희낙락이었지. 샘이 많은 사람은 그러더군. 영화에서든 개그콘서트에서든 향숙이라는 인물이 등장한 적 없고 그녀를 본 사람도 없어서 미추는 알 길은 더더욱 없다고. 아니, 잘 알아. 향숙이를 매일매일 보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30년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봐도 단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는 그녀는 이쁘기도 하거니와 마음마저 곱디곱다. 그러니 ‘향숙이 이쁘다’는 진리다.
유머는 대개 주어진 맥락 속에서만 실시간으로 의미를 발생시키고 웃음을 자아낸다. 조금만 시간 차가 생겨도 효력이 사라진다. 낮에 친구가 던진 농담의 뜻을 알아듣지 못해 멀뚱멀뚱 있다가, 저녁에 귀가해서 비로소 감을 잡고 그제야 친구에게 전화해서 낄낄대고 웃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타이밍이 생명이다. 대화의 흐름이나 벌어지는 상황을 시의적절하게 비집고 들어가 한마디를 던지는 순발력이 요구된다. 요즘 흔히 쓰인 말로 '촉'이 있어야 한다. (위의 책, 178쪽에서)
'촉'하니까 떠오르는 인물이 둘 있다. 용과 완. 이들은 깎새와는 고교, 대학 동기다. 세상에 이런 청산유수가 없을 만큼 말재주꾼들이다. 가끔 싱거운 아재개그가 지나쳐 실소를 자아내다 못해 그 뚫린 입을 꿰매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이는 역효과를 불러오긴 하지만 그 둘의 공통점은 크게 공들이지 않고 툭툭 내뱉는데도 그 효과가 촌철살인급이고, 무엇보다 우스개소리 한 마디로 대화의 장을 일순 뒤집어 버리는 절묘한 타이밍, '촉'에 있다. 천재적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임기응변과 재치는 마치 주위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적을 물리치는 무기로 탈바꿈시키는 맥가이버의 비상한 두뇌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내뱉는 말들로 버무리고 짜깁기한 다음 극적으로 재가공함으로써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분위기까지 반전시키는 탁월한 능력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주변의 불의한 강압에도 불구하고 터진 입을 절대 봉인하려 들지 않는 언어의 연금술사는 낙천주의자가 아니고선 처신하기 힘들 게다. 깎새가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 '근없낙(근거 없는 낙천주의자)에 근거한 꿋꿋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소싯적부터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이 낙천적이었다. 그런 태도가 그들의 말발에도 오롯이 스며들지 않았나 싶고, 성마르고 옹졸한 성질머리로 일상을 버티듯 근근히 사는 깎새로서는 그런 그들을 당연히 동경하면서 닮고 싶지 않을 수가 없는 게다. 하나같이 따라하기 힘든 버거운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들의 친구 리스트 말석이나마 끼어 있는 덕에 아주 가끔 조우해 술잔을 기울일 수 있어서 밋밋해지려는 인생이 기사회생되곤 한다. 그들에게 늘 고마운 이유겠다. 다만, 그들이 속사포처럼 퍼부어 대던 숱한 말발의 조각조각을 그러모으지 못한 게으름은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그들 입에서 터져나오는 것이라면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여투어뒀어야 하는데, 그럼 굳이 '웃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필요도 없을 텐데 하는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