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 필요 없나

by 김대일

고교 시절 선택한,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제2외국어는 독일어였다. 학력고사 난이도를 고려한 학교 당국의 전략적이면서 일방적인 과목 결정이었다. 상대적으로 점수 올리기 수월한 과목으로 고른 외국어가 독일어라지만 외국어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하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어 공부의 어려움을 '울기와 웃기'로 가름한, 믿거나 말거나식 가설이 왕년에 있었다. 매우 어중되고 썰렁한 이 정의定義에 따르면 영어는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오는 말이었다. 불어는 울고 들어갔다가 웃고 나온다고 했던가. 독일어는 울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오는 언어로 호가 났다. 일본어는 축에 들지 못했고, 중국어는 자장면 속에 아직 묻혀 있었다. (최일남,『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문학의문학, 88쪽)



1980년대 후반 부산 지역 대다수 남자고등학교 제2외국어가 독일어인 반면 여자고등학교는 주로 불어였고 간혹 일본어를 선택지로 추가했다. 다같이 '울고 들어가'긴 하나 나올 때는 웃고 나온다는 불어가 시험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는지, '울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오는' 독일어라서 우는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다가 상대적으로 시험 난이도를 낮추어 줄지 모른다는 꼼수에서 비롯된 제2외국어 선택인지는 학교 관계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하지만 대입시험 점수 1~2점에 사활을 거는, 총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살기등등한 수험생과 학부모가 매년 대기중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란이 일어날 게 뻔한 편파적 시험 출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바, 시험 난이도로 외국어를 선택하는 짓은 난센스다. 여학교 관계자는 여고생들의 탁월한 제2외국어 언어습득 능력을 감안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르게 하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남학교는 독일어하면 떠오르는 투박성에 기대 남자의 언어로써 제2외국어를 접근한 건 아닌지, 그게 맞다면 마초도 그런 마초가 없지만,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이상 "라떼는 말이야" 시절 제2외국어에 얽힌 해괴한 망상이었다.

아무튼 하씨 성을 가진 고교 시절 독일어 선생은 유치원생한테 가갸거겨 가르치듯 코밑이 거뭇거뭇한 선머슴같은 사내 녀석들을 대상으로 암기가 외국어를 잘하는 유일한 비결인 양 독일어 숫자 세기, 정관사 외우기를 랩 부르듯 몸소 시범을 보이고 따라 외우게 했다.


Eins(아인스=1), Zwei(츠바이=2), Drei(드라이=3), Vier(피어=4), Fuenf(푼프=5), Sechs(젝스=6), Sieben(지븐=7), Acht(악트=8), Neun(노인=9), Zehn(첸=10)



der(데어) des(데스) 뎀(dem) 덴(den)

die(디) der(데어) der(데어) die(디)

das(다스) des(데스) dem(뎀) das(다스)

die(디) der(데어) den(덴) die(디)




토익 만점자가 미국사람 앞에서 쩔쩔매듯 오로지 학력고사 고득점에만 초점을 맞춘 문법 위주 독일어 공부가 글로벌한 인재 양성에 필수인 외국어 습득 능력에 큰 기여를 했는지는 따로 덧붙이지는 않겠다. 그럼에도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첫머리 독일어( 베토벤 가곡 <Ich Liebe Dich>)는 알아들어서 그 가사를 왜 도입부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고, 팝송 <Jeanny> 에서 둔탁하고 각진 독일어로 읊조리는 Falco의 음울한 랩에 격하게 반응했던 게 선생의 신통찮은 독일어 발음일지언정 고교 삼 년 내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꼭 독일어 정서를 유감없이 주입당한 학습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까닭임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무상한 시절이 죄는 아닐진대 그런 제2외국어 시대도 옛날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부산 지역 유일이라던 부산대 독어, 불어학과가 통폐합된다는 소식이 3년 전부터 들리더니 2024년 사범대였던 독어교육학과와 불어교육학과가 인문대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로 결국 통합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든데다 지원자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조치라지만 과연 그것만이 본질적 이유인지는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언어학자 로버트 파우저는 한 칼럼에서 외국어 학습이 더 이상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든 근거로, 누구든 눈치챘겠지만,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을 예로 들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거의 많은 나라 학교의 외국어 학습은 주로 문법, 어휘, 독해 등 텍스트 비중이 크다. 그런데 텍스트야말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가장 높고, 그렇다 보니 기술 발전도 가장 빠른 편이다. 학생들은 외국어 텍스트 독해는 인공지능으로 해결하고 대신 세분되는 전문 분야 학습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외국어 과목을 필수로 채택하던 미국의 많은 대학은 이를 선택 과목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고, 일본의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필수 과목이던 제2외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바꾸고 있다.(로버트 파우저, <AI 시대...외국어 공부 필요 없다?>, 한겨레신문, 2024.06.27 에서)



그 반대편에서 견해를 펼친 쪽은 언어 습득은 인간의 특별한 영역이라는 전제로 인공지능을 학습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 통한 소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여긴다.



갈수록 작아지는 지구촌에서 공존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 육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언어라는 입장의 일환이다. 외국어 교육은 ‘교양인’이 갖춰야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는 전통적인 교육 전문가들의 교육 철학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같은 칼럼에서)



이 둘을 절충하자는 견해도 없지 않다. 외국어를 학습하려는 자는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계관을 넓히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이를 위한 도구로 여기던 인공지능을 이제는 학습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게 인간 욕심인 탓에 하루가 다르게 거침없이 빨라지고 가공해지는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와 능력치를 감안해 보건대 그저 학습의 동반자쯤으로만 치부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에 국제행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동시통역사를 대신해 인공지능이 언어 장벽을 없애는 자막을 아주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인간이 몸으로 하는 것부터 대체할 줄 알았지만 가장 지적이면서 숙달된 영역부터 대체하는 상황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할 욕구를 밑동부터 아예 잘라 버리게 만들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 꼭 '교양인'으로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읽거나 쓰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춘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습득하는 수많은 말들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언어 교육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하고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언어 교육이 설정해야 할 시급하고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외국어 학습을 인공지능에만 맡겨둔다면 장차 읽거나 쓰기의 기본적인 능력도 갖추지 못하는 세상을 살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같은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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