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 겨울

by 김대일

가을이란 녀석은 계절의 끝에 발만 살짝 걸쳐 있다가 무에 그리 급했는지 환절의 고개 너머로 후다닥 떠나버렸고, 그 자리를 삭풍이 여지없이 꿰차 버려 수은주가 갑자기 뚝 떨어진 요즘이다. 겨우 11월인데 말이다.

새벽 출근길 오한이 심상찮자 겨울 후드집업부터 얼른 꺼내 입는다. 한겨울엔 숫제 얼어죽을 판이겠다며 엄살도 적당히 떨라며 지청구를 퍼부어댈지언정 북향인 점방 창틀에 손바닥만한 햇귀조차 아쉽기 그지없는 해 짧은 겨울을 서너 해씩 났고 점방 이전을 하지 않는 한 겨울나기가 이어질 깎새로서는 이맘때쯤부터 없던 한기까지 만들어 덜덜 떨 지경이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면 손님 발길부터 뚝 끊긴다. 추워 죽겠는데 머리털 깎는 게 뭔 대수랴. 되레 모자 대용 보온재가 되고 좋지 뭐. 그런 식으로 겨울 다 가도록 이발을 미루지 말란 법 없으니 깎새 입장에서는 복장 터져 죽을 노릇이다.

깎새 점방이 위치한 동네가 다른 데보다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데다 점방은 점방대로 햇살 한 점 안 들어오는 북향이라서 겨울나기가 쉽지 않아서 냉기가 스멀스멀 온몸을 휘감으면 벽걸이 난방기는 성급하게 제 역할에 충실하려 든다. 한여름 에어컨 돌릴 때보다 전기를 더 많이 먹어 전기료 납부일만 되면 꼭 삥 뜯기듯 기분이 더러워 리모컨 전원을 켤까 말까 망설이기 일쑤지만 손이 곱아 바리캉 못 돌리는 것보다야 낫다 싶어 눈 찔금 감고 눌러 버린다.

건물 마당에 설치한 탓에 추위가 좀 맵다 싶으면 외부 수도가 얼어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던 세탁기를 작년에 점방 안으로 들여 놓은 건 크게 잘한 짓이었다. 따뜻한 부산일지라도 요즘 겨울엔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부쩍 잦다. 물이 안 도는 세탁기는 무용지물이라서 손님이 쓴 타월을 대신 일일이 손빨래해야 하는 수고가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실내로 옮기고부터는 세탁기가 탈이 나지 않는 한 문명의 이기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하니 겨울 수고를 크게 덜었다.

깎새한테 겨울은 사계절 중 가장 버거운 계절이다. 특히 혹한기면 그 강도가 더하다. 매상이 20% 이상 주는 것도 모자라 예상치 못한 데서 탈이 나기 일쑤다. 잘 나가던 바리캉이 멈추고 수도가 어는 식으로. 하여 손보고 고치느라 계획에도 없던 돈만 자꾸 샌다. 유비무환이 최고의 절약책이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바리캉이, 수도관이, 혹은 난방기나 세탁기가 사람처럼 아프다고 징징거리지는 않으니까.

겨울 되면 퇴근하기 전 챙기는 짓이 꼭 있다. 특정 계절에 특화된 습관이다. 세면장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 물을 찔끔찔끔 틀어놓는 것. 세면장 물이 안 나오면 장사를 못하는 재앙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물이 매상과 직결되는 점방이 목욕탕만은 아닐지니.

노심초사해지는 걸 보니 깎새 겨울이 곧 다가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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