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229)

by 김대일

'나'라는 말

심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행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 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워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 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평선이나 고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노총각 친구녀석은 불 꺼진 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불을 켜두고 출근하는 버릇이 생긴 건 물론이고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 대신 한두 시간 동네를 배회(산책이라고 강조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선택이다)하는 버릇까지 생겼다고 한다. 외로운 줄 이제야 깨달았다는 친구녀석이 너무 불쌍해서 마당발로 통하는 지인한테 중신을 부탁했는데 어찌 될지 두고봐야겠다.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라고 되뇌일 당신이 그리울 뿐이라는 노총각 친구녀석. '너'란 단어가 이토록 가슴 미어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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