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 말 들어라

by 김대일

이 바닥에 들어서고부터 금과옥조로 품고 사는 게 있다.

'남 밑에서 명절 대목 여섯 번은 나야 이 기술로 겨우 먹고 산다.'

과장된 게 아니다. 해마다 큰 명절이 두 번 오니까 총 3년을 원숙한 경지에 오른 기술자 밑에서 시다든 스페어든 굴러봐야 맷집 좋은 기술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깎새를 선례로 삼아서 제발 가볍게 여기지 않았음 좋겠다. 핵주먹으로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이 씨부렸다고 해서 유명해진,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은 가히 명언이면서 깎새가 품고 사는 금과옥조와 일맥상통한다.

세상은 결코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여 자기가 유리하게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면서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암만 이것이라고 확신한들 이것의 반대편에는 상대적인 저것이 도사리기 마련인지라 만약 이것만 철석같이 믿었다가 저것이고 말았을 때 밀려드는 좌절감이 의외로 막심하다 보니 밀려드는 정신적 피폐함을 막을 도리가 없다.

간혹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혹은 대책 없이 낙관적이다 보니 그 상대성을 간과하는 이를 발견하면 그 미혹을 깨부수고 싶어 안달이 난 깎새는 일단 마이크 타이슨 명언부터 씨부리고 볼 일이다. 그 사람도 제 딴에는 훌륭했을 계획을 수립했고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을 테다. 문제는 그 계획과 전략이라는 게 모래 위에 쌓은 누각처럼 허술하고 빈약할지 모른다는 메타인지적 자기성찰에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곤 한다는 점이다. 즉 객관적인 잣대로 자기 역량을 들이대기보다는 근거 없는 호기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상황을 긍정 일변도로 호도하다 보니 느닷없는 변수에 맞설 대응책 마련은 고사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안일한 무데뽀로 모면하려는 뻘짓이 눈에 훤하다.

버젓한 요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열악한 근무 여건에 질려 그만두고 편의점을 전전하던 젊은 손님은 느닷없이 제빵 기술을 배운답시고 몇 달 학원을 전전하더니 요행히 빵가게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마저도 고되다는 핑계로 그만뒀다고 두어 달 전 방문 때 근황을 알렸다. 며칠 전 다시 왔을 때 이번에는 유명 체인 일식점에 발탁되어 한 달 넘게 근무 중이라면서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일을 맡게 되었다면서 섣불리 안도했다. 머릿속에서 저간의 사정이 그림으로 그려지자 깎새는 오늘만은 그냥 두고볼 일이 아니다 싶어서 전가의 보도인 양 품고 사는 깎새만의 금과옥조와 마이크 타이슨 명언을 버무려 오지랖을 떨어댔다.

- 남 밑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이번만은 나 죽었소 하고 3년만 버텨 보소. 누가 아오, 일 잘한다고 점장 자리 내어줄지.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깎새 점방을 찾는 젊은이라 다음 번은 아마 설 명절 쇠고 오지 싶다. 그때도 여전히 그 일식점에 붙어 있다면 포도송이 그림에 스티커를 다 붙이면 사은품 주던 예전 단골 슈퍼 사장 심정처럼 깎새도 대견해할지 모른다.

- 명절 한 번 쇠었소. 다섯 번 남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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