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230)

by 김대일

정일근



아침에 끓인 국이

저녁에 다 쉬어버렸다

냄비뚜껑을 열자

훅하고 쉰내가 덮친다

이 기습적인, 불가항력의 쉰내처럼

남자의 쉰이 온다

일상의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던 시간의 게릴라들이

내 몸을 무장해제 시켜놓고

나이를 묻는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나와 함께 사는 어느 것 하나

나이보다 뒤쳐서

천천히 오지 않는다

냄비에 담긴 국을

다 쏟아버려도

사라지지 않는 쉰내

냄비를 씻고 또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쉰내

이미 늦었다

나의 생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내 심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빠르게 빠르게



(쉰 살이 넘어가자마자 마치 썩은 먹잇감을 향해 일제히 달려드는 하이에나떼처럼 무시로 사정없이 물어뜯는 것들이 있다.

늙음, 인생무상, 죽음 ···.

이전에도 숙명론적 회의에 괴로워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이처럼 본격적이지는 않았다. 하여 '쉰'이라는 나이는 변곡점이다.

다만 시인이 밝혔듯 빠르게 부패되는 생의 속도에 그저 손 놓고 있다간 그야말로 속절없다. 그러니 쉰내가 덜 나게, 아니 가급적 늦게 나게 하려는 궁리부터 궁리해야 한다. 인생은 결국 소멸하지만 어떻게 사그라지느냐가 쉰 살을 넘은 자의 화두인 셈이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사라지긴 죽기보다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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