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합시다

by 김대일

부동산 중개업으로 밥 벌어먹고 산다는 손님은 두어 달에 한 번꼴로 머리를 깎는다. 헤실헤실한 머리털을 두어 달씩 길러 오니 볼품이랄 게 없지만 자르고 다듬으면 금세 딴사람처럼 말끔해진다. 보기와는 달리 중후한 목청을 장착해서 들어올 때와는 판이해진 말쑥한 맵시에 더해 로맨스그레이가 따로없음에도 그 묵직한 목소리로 떠드는 수작이란 게 주책없어서 결국 제 살 깎아 먹는 모양새인 게다.


- 차린 지 4년째라고? 한 자리에서 진득하면 이발소도 돈은 되지.

- 요금 싸다고 우습게 볼 게 아니야. 푼돈 모아 건물 산 사람도 있어.

- 지금 세 든 건물 시세가 얼마쯤 돼 보이우? 몇 년 부지런히 모아 아예 사 버리지 뭐. 대출 받아 내는 이자를 월세인 셈 치고.


이 양반 한결같다. 떠벌리는 레퍼토리에 창의성이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으니. 허나 점방 들를 적마다 녹음기 틀 듯 매번 같은 말을 되뇌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깎새짓으로 먼저 성공한 자의 사례를 실물경제적 관점에서 조언해 주려는 복덕방 주인의 사명감 같은 게 작동해서라고 좋게 포장해 주고 싶다.

깎새가 자리잡기 한참 전에 근동에서 남성 커트점을 낸 어떤 여자가 서너 해 바짝 장사해 돈을 갈고리질로 긁어 모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깎새처럼 커트 요금 오천 원으로 시작했다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요금을 야금야금 올렸는데도 줄곧 성황이었다나. 얼마나 번창했으면 몰려드는 손님들 받아내느라 제때 숟가락 든 적이 없었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여자 원장이 끼니를 제때 때웠는지 밥 먹듯이 굶었는지는 그녀 옆에서 온종이 붙어 있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으니 신빙성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떴다방도 아니면서 근동에서 단물 다 빨아먹은 점방을 싹 정리한 뒤 자기가 사는 동네 3층짜리 건물을 사서 1층에다 커트점을 이전했다는 건 여자 원장의 골수 단골이라고 자처하는 한 손님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그가 전한 바로는, 아쉬운 마음에 수소문해 새로 연 점방까지 일부러 찾아갔는데 공교롭게도 점심시간과 겹쳤단다. 점방 문에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푯말을 붙여 놓고 문을 꽁꽁 잠궈 놨길래 먼 걸음한 게 아쉬워서 연락을 취했다나. 그러자 2층 창문이 열리더니 여자 원장이 빼곰히 얼굴 내밀고선 밥은 제때 먹어야겠으니 기다리려면 기다리고 아니면 말라고 해서 되돌아갔단다. 서운한 마음부터 들었지만 벌긴 제법 벌었구나 자기 일처럼 뿌듯했단다.

복덕방 주인이든 골수 단골이든 그 여자 원장 성공 사례를 목격한 열이면 열 다 깎새 앞에서 그녀를 들먹이며 돈 많이 벌어 성공하라고 늘 푼수 없이 떠들어 대긴 하더라.

허나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귀 따갑다. 흥하라고 오지랖 떠는 입을 막을 수야 없지만 그런다고 없던 능력이 갑자기 출중해지진 않는다. 갈고리질해서 돈을 긁어 모을 수완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다는 걸 스스로 절감하는 깎새한테는 따라서 쇠귀에 경 읽기다. 그저 본분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푼돈 벌어 제 분수에 맞게 사는 걸 지향하는 바라서 덕담을 덕담으로만 받아들이게 제발 적당히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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