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만인의 적(1)

by 김대일

들를 적마다 팁을 잊지 않는 점잖고 매너 좋은 단골. 다 좋은데 이발하려고 다가가면 담배 쩐 내 진동하는 게 흠이라면 흠. 한동안 뜸하더니 하루는 아들인 성싶은 청년 부축을 받고 기신기신 들어오길래 중병을 직감했다. 아니나다를까 심장에 무리가 와 수술 후 가료 중이라나. 병마가 느닷없다고 위로했더니 대뜸 "담배 때문이죠" 한다. 그 단골 요즘은 혼자 거동한다. 다만 예전같지 않은 더딘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그럼에도 숨이 가쁘다. 옆에서 보고 있는 깎새도 덩달아 호흡이 거칠어지기 일쑤다. 담배 쩐 내가 안 나는 게 전과 달라진 점.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런 결단이다.

고령임에도 바다낚시를 즐기는 단골도 골초다. 그 나이에 담배를 얼마나 피워재끼는지 심장 수술한 단골보다 쩐 내가 더하면 더했다. 그럼에도 낚시는 물론이거니와 안 다니는 데가 없이 잘 돌아다니니 노익장이 따로없다. 그렇게 기력 왕성하던 노친네가 요즘 들어 깎새 점방에 들어올라치면 100미터를 전속력으로 달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선수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뜻대로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이 모르긴 몰라도 담배를 입에 물고 산 후과後果인 성싶다. 그런데도 노친네한테서 여전히 담배 쩐 내가 진동한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손을 댄 담배를 만 26년이 지난 2017년 3월경 주저없이 끊어 버린 깎새. 벌써 8년 넘게 금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식후 연초가 불로장생의 지름길이라는 둥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인생 제대로 사는 법이라는 시답잖은 자리합리화로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습관적으로 피워대던 담배. 그 때문이 분명한 두통과 빈혈을 달고 살았고 가슴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듯한 흉부 통증이 새벽 잠자리를 불쑥불쑥 침입했었다. 문득 담배가 주는 쾌감이 과연 내 육체와 맞바꿀 만큼 값어치가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기껏 한 되 받으려고 한 말씩이나 내어 주는 우매함은 이쯤에서 관둬야겠다 마음먹자마자 그길로 담배와 라이터를 미련없이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스스로에게 모질었다기보다 그러지 않으면 제 명에 못 살겠다는 절박한 심정의 발로였다.

담배가 꼭 해악만 끼친 건 아니다. 담배 한 대로 얻을 수 있는 심신 안정의 경험은 담배를 피워 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바다. 깎새도 예외일 리 없다. 특히 군생활하던 무렵 담배는 깎새에게는 전장 속 전우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임지로 간 때가 1995년 6월. 자대랍시고 발령 받은 데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란 우스개 조문弔問으로 악명 높던 강원도 동북 산악지역 보병대대에서도 81밀리 박격포를 운용하는 중화기 중대였다. 깎새 포함 일곱 명뿐인 간부 체격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인 보통 몸집인데 반해 깍짓동만 한 떡대에 마동석도 울고 갈 험상궂은 인상을 탑재한 녀석들로 부대는 득시글거렸다. 그런 곳에서 그들과 꼬박 이태를 부대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암담해 그저 망연자실해할 뿐이었다.

중화기란 수식어에서 읽혀지는 거칠고 육중한 무기를 수족처럼 다루며 적군을 대량으로 살상하도록 훈련받은 병사들 기질은 투박하고 괄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보병대대 예하에 배속되어 있음에도 시쳇말로 땅개 소총중대와는 다른 그악함이 초장부터 신임 소대장을 옴치게 만드는 건 당연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파란 애송이가 소대장이랍시고 깝신거리는 꼴이 눈꼴시었을 게다. 소대장 길들이기 제물로 삼을 음모를 꾸미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까마는 아무튼 당시 착잡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만기 전역하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는지 매일매일이 캄캄한 암흑 속을 허우적대는 듯한 막막함, 낭떠러지 앞에서 까치발로 위태롭게 서 있는 기분이 그와 다를까.

이렇다저렇다 말도 없이 장초 대여섯 대를 한 자리에서 거푸 피워대질 않나 그 바람에 반나절만에 두세 갑이 금세 동이 나 소대장 담배를 공수하느라 전령이 진땀깨나 뺐을 거이다. 없는 말 만들어서라도 다가서는 나긋나긋한 성미가 못 될 뿐더러 ‘왜 내가 이런 오지에 떨어졌지’라는 뜬금없는 열패감만 눈덩이마냥 부풀어져 애꿎은 '88라이트'만 죽을 둥 살 둥 태워 댔다. 난생 처음 겪는 객지 생활 설움이랄지 실체도 불분명한 공포감이나 덜 요량으로 꼬실르던 타르와 니코틴 범벅인 헤비한 담배를, 그것도 매일 서너 갑씩 물고 다니던 무모함을 객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마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용했다 둘러댄다면 그나마 덜 민망하지 싶다.

심각했을지언정 제 딴에는 흡연에 기대 아주 잠깐이나마 안도감을 구했던 건 사실이었다. 이후로도 열없어 긴장이 확 몰려올 때면 담배 한 대 어김없이 입에 물어 잠깐의 여유이긴 하지만 숨을 고르고 전열을 가다듬는 버룻이 생겼으니 진정제가 달리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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