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제 아무리 효험이 좋은 양약이라 한들 몸에 안 받으면 독약이다. 그런대로 견뎠을 젊은 시절을 지나고 났더니 그 해롭다는 타르, 니코틴 따위가 몸뚱아리 약한 데만 골라 들볶는 기운이 역력해졌다. 재차 말하건대 일말의 쾌락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면 그게 너무 억울해서, 이왕 죽을 몸이라면 곱게 안 아프고 죽는 것도 복이다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장초를 분질러 버렸던 것이다. 몸속 담배진이 거의 다 빠져나오고 나서야 담배를 태우는 본인한테만 피해가 국한되지 않는 민폐가 마침내 보이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간접흡연이 끼치는 피해도 무시하지 못하는 바라서 사회적으로 흡연 문화를 개선하자는 요구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흡연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안하무인하는 흡연 말종을 발견하면 깎새는 분개하고 만다. '선병자 의醫'라는 옛말도 있듯 금연을 단행한 사람이 흡연의 폐해를 직격할 수 있다. 개업한 지 4년이 다 되도록 점방을 꾸리는 동네에 깎새가 정을 못 느끼는 가장 큰 까닭은 대중없이 피워대는 담배 문화가 크게 한몫했다.
생판 모르는 동네를 방문해 그 호불호를 결정지을 때 깎새가 첫손으로 꼽는 요인은 쾌적함이다. 삭막한 도심 속 동네에서 싱그러운 전원 풍경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주민들이 자기 동네에 자부심 충만한 주민들에게서 부지불식간에 풍겨져 나오는 어떤 고유한 풍경과 내음이 이방인에게도 옮겨져 상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선사한다. 그런데 깎새 점방이 있는 동네는 그 풍경과 내음을 담배가 대신하고 있다. 동네를 걷다 보면 담배 꼬나물고 걸어가는 사람이 유달리 많다. 자기 뒤로 행인이 따라오건 마주보고 걸어오건 전혀 개의치 않고 담배를 힘껏 빨아 훅 하고 연기를 내뿜는 풍경이 여기서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담배 내가 일순 공기를 더럽혀 주변을 혹사시킨다.
비단 남 눈치에 둔감한 꼰대들만의 전횡이 아니다. 남녀노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워 대니 동네 거리는 거짓말 좀 보태 담배 연기로 온통 자욱하다. 내가 내 담배 피우겠다는데 웬 참견이냐 발끈하는 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흡연자 혼자 길을 세 낸 게 아니라면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간접 흡연의 피해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아예 모르는 건지 알아도 모른 척하는 건지 간접 흡연이 끼치는 해로움에 전혀 개의치 않는 불감증이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왕 터 잡았으니 한 곳에서 오래오래 장사하고 싶은 깎새인지라 동네를 폄훼해봐야 누워서 침 뱉기다. 그럼에도 세상은 상대적이어서 덕분에 균형감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흡연자가 있으면 비흡연자가 있으며 길은 누구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서 길을 걷는 행위에도 일정한 도덕률을 적용받는다는 별로 어렵지 않은 도리만 지켜 준다면 타지인이 끽연 이기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악명을 붙일 이유가 없다.
점방 들어오기 직전 꼭 담배 한 대 다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 끽연 손님은 깎새의 적이다. 이발 작업하는 내내 그놈의 담배 쩐 내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일쑤라 비흡연자만 골라서 손님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담배는 만인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