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산 기개세

by 김대일

허리가 ㄱ자로 굽은 노인은 보행기를 끌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 보행기에는 오가며 수집한 폐지며 재활용 깡통이 요령껏 매여 있다. 요령껏이라고는 하지만 어떨 땐 보행기보다 부피가 더 큰 것들을 착착 포개 잘도 끌고 다닌다. 보기에 위태해도 정작 당사자는 유쾌하다. 그 유쾌함은 그 노인이 오고가는 줄 아는 까닭과 맞닿아 있는데 저 멀리서 경쾌한 트로트 가락이 울려퍼지면 딱 그 노인이다. 폐지 줍는 노인에게서 흔히 풍기는 고단한 노년 따위와는 전혀 상반된 그 유쾌함을 트로트 가락이 고스란히 표상하는 성싶다.

노인은 오래된 단골이다. 단골이라서 깎새도 폐지며 깡통을 모아 건넨다. 모으면 무게가 꽤 나가는 신문 다발은 점방 개업한 이래 매달 수거해 가는 다른 노인 몫이라 그게 미안해서리 허리 굽은 노인한테 양해를 구했다. 그랬더니 쿨하게 받아넘긴다. 사람이 신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수더분한 수긍에 그만 녹진해진 깎새는 수능 끝난 막내딸 참고서며 문제집으로 한 상자 바리바리 채워서 단골에게 넘겼다. 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걱정이 앞섰다. 암만 요령이 좋아도 무거운 책을 보행기에 어떻게 매달 것인가. 보관해 둘 테니 여러 번 나눠 가져가랬더니 이깟 일로 귀찮게 만들어선 안 되고 폐지 하루이틀 줍는 거 아니라면서 줄로 돌돌 묶어 잘도 끌고 간다.

- 할배요, 올해 연세가 우찌 됩니꺼?

전부터 궁금했던 터라 스치듯 물으니 예의 구수한 남도 억양으로,

- 나, 아흔 둘 묵었으야.

허리만 굽었다 뿐이지 정정하기가 항우 장사 저리 가라다. 가히 역발산 기개세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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