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적 심상

by 김대일

클래식FM을 즐겨 들었던 까닭은 속 시끄럽지 않아 일단 좋아서였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만 두면 귀에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음악 장르가 24시간 내내 흘러 나와 마음 편하고 프로그램 진행자가 요란스럽지 않게 자분자분해 덤으로 좋았다. 성미가 모나고 까다로운데 불행 중 다행으로 혼자 있는 걸 즐기는 깎새한테는 안성맞춤인 무형의 친구였던 셈이다. 여러 프로 중 특히 애청했던 건 <세상의 모든 음악>이었다. 퇴근길에 프로그램 제목을 그냥 재미로 붙인 게 아니라는 듯이 장르 불문 세상 갖가지 음악을 홀가분하게 즐기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데다 듣다가 멋쩍게 영감 같은 게 가끔 떠오르면 다음날 끼적일 글감으로도 요긴했다.

그런 소소한 일상은 작년 12.3 계엄 직후부터 송두리째 깨져 버렸다. 한가하게 음악 들을 마음의 여력이 쫓기듯 사라졌다. 음악 들을 시간에 유튜브를 켜 시사 프로를 시청했다. 세상이 미쳐 날뛰고 진압될 기미가 안 보이는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쓰러질 듯 위태로운 중심을 잡으려니 시대의 신경안정제라고 불리는 스피커들한테 귀를 기울였다. 신경의 핏대가 날카롭게 서 있는 긴장된 상태에서 서정이니 낭만 따위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뀌어 버린 일상 패턴은 되돌리기 쉽지 않았고 여태 그러고 앉았다.

2024년 4월 어느날 게시한 글에 우리말로는 <아름다운 달>쯤으로 번역될 <Luna Guapa>를 부른 플라멩코 연주 그룹 Energipsy를 언급했었다. 원래 잘 알던 아티스트는 아니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다가 귀에 꽂혀 관심이 일었다. 그들 음악을 유튜브에서 암만 검색해도 찾을 수 없어 아쉽다는 게 글 내용의 골자였었는데 며칠 전 그 글을 본 블로거가 댓글을 달아 <Luna Guapa>가 수록된 <세상의 모든 음악> 방송 편집본을 보내줬다. 하도 고마워서 댓글에 대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세음'은 한때 애청하던 프로였습니다. 듣다 보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감으로 마음 두근거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헌데, 작년 12.3 계엄 이후로는 클래식FM과는 담을 쌓아 버렸습니다. 대신 유튜브 시사프로가 그 자리를 꿰찼고 지금에 이르렀지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당장 음악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감이 온통 마음의 여유를 옥죈 셈이지만 그 탓에 스스로 정서를 황폐화시킨 꼴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님의 블로그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 같더군요. 영혼을 활성화시키는 윤활제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몹시 부럽더군요.

다시 말씀드리건대, 덕분에 귀 호강했습니다.



공감각적 심상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나의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일어나는 심상을 일컫는다. 청각의 시각화, 시각의 청각화 따위는 두 감각의 능력치가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다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게 닫혔던 귀를 열고 싶다. 하여 듣는 것과 보는 것이 잘 어우러진 공감각적 심상으로 세상과 원만하게 연결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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