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2)

by 김대일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2016년 여름. 미식가이기는커녕 그 입맛이라는 게 허섭스레기나 다름없는 작자는 친한 친구가 겨우 주선한 대형 찜질방 관리과장 자리를 1년 반 만에 때려치우고 다시 백수가 되었다. 이름 대면 알 만한 부산 유명한 부옹富翁이 인수해 리모델링한 뒤 새로 개업한 찜질방은 부산 해운대에서도 전망 하면 빠지지 않는 노른자위 땅에 자리잡은 덕에 명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리모델링할 때부터 부옹은 말할 것도 없고 내부적으로 이른바 로얄 패밀리라고 불리던 부옹 가족에다 사돈의 팔촌까지 간섭과 월권이 지나치다 보니 나간다고 딱히 밥벌이 대안이랄 게 있지도 않으면서 결국 탈주를 감행했던 것이다. 남 밑에서 벌어먹고 살 팔자일진대 발끈하는 그놈의 성질머리를 얻다 써먹겠느냐는 한숨 섞인 구박을 뒤로 하고 해방감에 일단 젖어 한동안 실업급여에 기대 룸펜의 여유를 작작 누렸었다. 그러다가 대학 동기 중 한 녀석이 부산 교육청 장학사가 되었다면서 동기들끼리 축하연을 가진대서 갔던 곳이 <나폴리 우럭>이었다.

장학사 나으리가 된 녀석은 예약만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요릿집에서 한 턱 거하게 쏠 일념으로 일주일 전에 예약을 걸어두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예약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단다. 1991년 국어국문학과 신입생은 60명이었고 그 중 남자만 13명이었다. 까까머리 머스마들이 한 무더기로 들어오기는 80년대 이래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학과에서는 충격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사건으로 비춰졌고, 그런 분위기에 흠뻑 젖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절로부터 꽃밭 속의 벌레들, 즉 화중충花中蟲이란 자부심서껀 같잖은 사나이 우정 따위 감정이 그들 사이에서 횡행했었고 그 기류는 중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고로 기특하긴 하다.

13명 모두가 통신 축선 상에 늘 대기 중이었던 건 아니다. 개중에는 수취인 불명이 되었거나 부산 아닌 데서 터 잡은 뒤로 격조해진 녀석이 여럿 되었으니까. 사발통문이 돌아도 회신이 안 되는 녀석들을 빼면 일여덟이 부산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인원은 장학사 나으리까지 다섯 명이었다. 명석한 국어 선생으로 이름께나 날리다가 사나이 칼 뽑았으면 무라도 자르겠다는 심산으로 교장으로 가는 첫 관문인 장학사로 방향을 틀었지만 뜻밖의 고배를 마신 뒤 우울증으로 한참을 고생하면서 절치부심하더니 기어이 교육청에 입성한 이 장학사(이하 ‘이장’이라 칭함), 사립 고등학교 한 곳에서만 장기근속하면서 똑 부러진 대학 진로 지도로 다른 건 모르겠고 그 부문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선생(이쌤), 한국 근대소설 연구의 대가로 저명했던 부친을 학과 교수로 모신 탓에 학창시절 내내 도마 위에 본의 아니게 올라 비교를 당하는 울분에 겨워선지 졸업 후 한동안 종적이 묘연하다가 결혼한다며 불쑥 나타나서는 모교 인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몇 해는 따뜻하게 보내는 중이지만 곧 다시 백수로 복귀할 공산이 크다는 김 박사(김박), 대학 졸업 후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참 겪다가 마음 돌이켜 먹고 교육대학원에서 교원 자격증을 취득해 기간제 국어교사로 전전하지만 3년 전 부임한 여고에서 정교사 발탁 가능성이 보일락 말락 해 기대를 내심 걸고 있는 김 선생(김쌤-설명이 좀 필요한데, 이후 그 학교 수뇌부 농락으로 정교사로 발탁되기는커녕 그길로 기간제 교사를 관두고 공무원 준비에 들어가 지금은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전향한 바로 그 노총각 김가), 잘 다니던 찜질방을 홧김에 그만두고 실업급여로 연명하던 작자(백수), <나폴리 우럭> 회동은 이렇게 다섯이었다.

백수를 빼면 제 버릇 개 못 주듯 다들 세종대왕한테 빌붙어 사는 품으로는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랍시고 주안상을 받은 앞에서 시구나 읊조리고 고담준론을 들먹일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서 금기시되는 분야는 바로 그 문학이다. 문학의 ‘문’자만 꺼내도 돼먹잖은 짓이라 조롱당하기 일쑤고 급기야 집단 이지메를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주의가 요망되는 바 험한 꼴 안 당하려고 자기검열은 필수였다. 간혹 문학평론가이면서 교사인 박쌤이 낄 때면 눈치없는 짓을 자행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 자리엔 선약 때문에 박쌤이 불참했다. 아무튼 밥벌이의 고단함에 단단히 씹힌 문학의 비애이긴 하지만 그것 아니라도 술자리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는 숱했다. 그래서 어떻게 노느냐고? 다섯 녀석이 술 마시면서 노는 현장을 스케치하면 이렇다.


- 이장: 우리가 얼마나 팔아줬는데 'OO노래방' 사장은 갈 적마다 바가지를 씌워. 밉어서라도 다신 안 간다. 니들도 앞으로 거긴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라잉. 그건 그렇고 니는 와 엊그제 혼자 거길 납셨으까나?

- 백수: (김쌤을 쏘아보면서) 뭐시라?

- 김쌤: (능청스럽게)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해야 되지 않것나 싶어서리.

- 백수: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읎고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카드만 딱 그 짝이네. 이장하고 내가 그리 놀자고 할 땐 노래방 끊었다고 오만 점잔을 다 빼드만, 혼자 갔따꼬? 가서 노래방 여사장하고 단둘이서 작별주를 기울잇따꼬?

- 김쌤: 작별 인사라 안 하나. 학부모 하는 노래방이래서 내가 얼매나 신경을 썼는지 너거들도 잘 알잖아. 아무리 우리 등골을 홀라당 빼 묵었어도 사람이 그라먼 못써. 회자정리란 말 모리나? 신사적으로다가 마지막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서리.

- 이쌤: 암만, 김쌤 마음을 왜 모르까이. 노래방 사장이 과부라는 것도 알고 김쌤 늦장가도 들어야 하는 것도 알지르. 그래서 하는 말인데(안그래도 가는 눈이 육감적으로 더 가늘어지는 동시에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재밌드나 김쌤?

- 김박: 물어볼 기 뭐 있노. 깨가 쏟아짓껏지.

- 김쌤: 어허, 진짜 술만 뭇따니까!

- 김박: 손만 잡고 잤으예~~~

- 이쌤: 안주가 읎네. 김쌤, 뭐 묵고 잡노? 우럭 튀김 더 시키주까? 오늘 마 뱃심 든든히 해까고 밤새 씨부리보자. 사장님, 여기 우럭튀김 추가요!

- 이장: 느그들, 거 말고 저기 로타리 쪽에 새로 생긴 노래방이 있는데 기가 찬 기라.



이글거리는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이장의 얼굴로 모였다.

2차로 근처 수제 맥주 펍으로 향했다. 돼지 목에 진주일갑세 이장은 수제 맥주만 찾는 마니아였다. 따로 두어 번 따라갔는데 맛은 그렇다 치고 뭔 맥주값이 금값이라서 백수로선 언감생심이라. 한 조끼 값으로 병맥주 서너 병에 쥐포까지 곁들여 한 상 차리겠더만. 아무튼 구닥다리 중년 다섯이서 맥주잔이나 쪽쪽 빨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그 펍이라는 데가 물 관리 한번 제대로 됐는지라 화사하기 그지없어 오히려 민망했지만 상큼한 꽃들에 둘러싸여 헤벌쭉거리는 중년남자들의 의뭉이 한편으로 귀엽기도 했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낙원 같은 공간이었지만 남녀 공용으로 쓰는 좌변기 한 대가 다인 화장실만이 흠이라면 곤혹스러운 흠이었다. 가뜩이나 전립선비대증이니 과민성 방광으로 요실금 기미까지 비치는 다섯 중년남들로서는 뒷간 입장 타이밍을 놓치기라도 하면 하릴없이 고단한 인내를 감수하며 다음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하여 화장실 문이 열리자마자 김쌤과 백수는 쏜살같이 달려가 동시에 문고리를 잡는다. 씨익 썩소를 날린 백수가 어깨를 먼저 문 안으로 들이민다.



- 김쌤: 같이 싸자. 급하다잉.

- 백수: 기둘려. 찔끔찔끔거리서 영 찝찝하다.

- 김쌤: 작작 퍼마시라. 한 잔에 얼마짜린지나 아나? 몇 잔째고?

- 백수: 술값 자네가 내는 겨? 그라믄 얼른 싸고 몇 잔 더 마시야겠네. 기둘려!

- 김쌤: 지랄은.



담배가 떨어진 백수가 화장실 밖에서 김쌤을 기다린다. 볼일 다 본 김쌤과 어깨를 겯고 흡연실로 향했다.



- 김쌤: 이 나이에 마르크스라도 탐독했드나?

- 백수: 엉?

- 김쌤: 나이 들어 대갈통에 똥 채울 일 있냐 이 말인기라?

- 백수: 뭐라카노?

- 김쌤: 누군 배알이 읎어서 굽실거리는 줄 아나? 더럽고 앵꼬와도 그게 목숨줄이다 싶으믄 참았어야지. 니 혼자 사나? 우째 그리 철딱서니가 없노. 그래, 다니던 직장 때리치우고 마시니까 술이 더 맛나드나?

- 백수: ···.

- 김쌤: 직장 생활 하믄서 마음고생 심했던 거 와 모리겠노. 그렇다고 가리늦게 빨간물 든 책 들춰본다고 달라질 게 뭐 있노. 이 나이에 변호사가 될 끼가, 노무사가 될 끼가. 송충이는 솔잎만 묵어도 배가 부른 기라.

- 백수: 그만둘 만하이 그만 둔 거 아이가.

- 김쌤: 대갈통에 똥만 들이찼는 기라 븅신아. 누울 자릴 보고 다릴 뻗으랬다고, 니가 청춘이가?



멱살잡이라도 할 타이밍에 웬일인지 말문이 턱 막혀 버린 백수.

종양을 몇 해 전에 성공적으로 제거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이쌤을 먼저 귀가시키고 이장이 뚫었다는 노래방으로 가 신나게 놀았다. 노래방 도우미 손을 얌전히 잡고 정말 노래만 부르는, 노래방 가서까지 제 이미지 관리에 철저한 이장의 이상한 강박증은 여전했고, 남자 넷에 여자 둘이란 척박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제 파트너라고 짐짓 찜해 놓은 도우미하고 노래 대신 야부리만 연신 까 대는 김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재야의 언더그라운드 노래들로 마이크를 독식하다 못해 입은 뒀다 뭐하냐면서 랩도 아닌 주둥이질을 연신 주절거리는 김박, 간만에 공짜술 호강에 들떠 짝으로 들어온 맥주를 병나발째 들이부으면서 서비스 안주 더 내놓으라고 주인장을 들볶는 백수까지 그날 밤을 열심히 즐겼다. 딱 2시간만 놀다 간다는 철칙을 그날도 고수한 이장 등쌀에 꽉 채운 2시간 뒤 노래방을 나설 때는 자정을 이미 넘겼고, 늦은 밤 출출해진 뱃속을 국수로 달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 이장: 옛다. 젤 멀잖아 여서 해운대가.

- 백수: 내가 그지가?

- 김쌤: 줄 때 얼른 받아라.

- 백수: 오늘 여러 번 쪽팔리네.

- 이장: 그러게 성깔 좀 죽이고 살면 어데가 덧나나. 잘 다니던 회사는 와 때리치아가꼬.

- 백수: 내가 무슨 큰 죄 짓나. 자꾸 와 그라는데 니들?

- 김쌤: 얼릉 들어가라. 집구석에 틀어박히서 궁상 떨지만 말고 다른 데 자리 있는지 잘 디비보고.

- 김박: 책 파묵는 짓이 얼매나 배고픈지 아나. 내 봐라, 박사라케도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우리 나이에 공부가 웬 말이고. 그건 쫌 아이다. 소싯적에 가오 잡고 호기 있게 니나노거리던 기 니 참모습인기라. 그런 니를 다들 좋아라 하는 기고.


심야 할증까지 더해서 택시 요금은 이만 원을 훌쩍 넘었다. 사람 우습게 보는 듯해 언짢았지만 잘 받은 셈이다. 얼마짜린가 펴보니 신사임당 할매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셈하고 남은 우수리가 의외로 두둑해 기분이 좋아진 백수였지만 맥주 집에서 김쌤이 날린 일갈이 턱턱 걸린다. 송충이는 솔잎만으로도 배부르다니. 더운 밥 먹고 식은 방귀나 뀌는 녀석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카운터 펀치가 어찌나 얼얼한지 백수는 신새벽에 술이 확 깨더라.


​ 그로부터 4년 뒤인 2021년 여름, 앞길이 구만리 같던 이장이 백혈병으로 죽었다. 이장과 유독 친했던 이쌤은 동기 모임의 수장이나 다름없던 이장이 죽으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자유로운 영혼을 자처하던 김박은 수취인 불명조에 합류했는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연락 두절된 지 한참이다.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전향한 김쌤이랑은 그나마 가끔 만나지만 <나폴리 우럭>이 화젯거리가 될라 치면 이장이 자꾸 떠올라 자제한다. 그렇게 그들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지만 그때 씹던 우럭 맛만은 갈수록 생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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