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

by 김대일

1974년생인 남동생은 똑똑하다. 학교라는 데를 다니면서부터 수위首位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학력고사를 치뤘던 1993년 인생 첫 고배를 마셨다. 재수로 절치부심했건만 원하는 수능 성적이 못 나와 독수리다방으로 유명한 신촌의 대학교로 진학했다. 그래도 수위 본색은 여전해서 4년 내내 과 수석을 놓치지 않은 경제학도로 전도유망했다.

그렇지만 운빨이 시원찮아 IMF 충격파를 직격으로 맞은 탓에 졸업하고도 오갈 데가 변변찮았더랬다. 소나기나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산으로 대학원으로 진로를 맞추려다가 노느니 염불하는 심정으로다가 원서 넣은 한 통신사에 덜컥 붙어 버렸고 이후로 여태껏 눌러앉았던 것이다.

그 회사 다행히 국내 굴지의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로 승승장구했고 동생도 덩달아 승승장구하면서 이른바 선망하는 대기업 직원으로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거죽 이면에 도사린 불우는 의외로 동생 가족을 고단하게 만들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배우자까지 득병해 시난고난하기를 지금에 이르렀으니까. 임원 자리에 올라 회사 중책을 맡은 건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대학생인 연년생 두 딸 졸업시킬 때까지 자리보전하려면 임원이 아니 되었어야 했다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남동생이 그제 매달 송금하는 모친 병원비와 함께 카톡 한 통을 부친께 보냈다. 이달 말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당분간 모친 병원비 보태기가 어렵다고. 날벼락 같은 소식에 부친 대신 통기를 넣었더니 의외로 쿨했다.


- 짤맀지 뭐. 임원 목숨 파리 목숨 아이가.


당분간 푹 쉬고 싶댔다. 언젠가 제주도 내려가서 당근 농사 짓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도 했다. 그동안 누구보다 고생했으니까 푹 쉴 만하다는 형 위로에 의외로 선선하게 수긍했다. 쉰을 넘어서야 형제는 공감했다. 당분간 모친 병원비 못 보태는 게 유일한 걱정이라고 하길래 자네나 신경쓰라고 눙쳤다.

양친에게는 동생이라서 잘 헤쳐 나갈 거라고 안심을 시켰지만 간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 형이다. 형편으로 따지면야 동생이 오히려 형을 걱정해야겠지만 형은 동생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궁금하고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아주 간략하게 동생을 얘기했지만 그 녀석 살아온 이력은 의외로 복잡다단하다. 언제고 소주잔 기울이면서 녀석과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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