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먹을 필요 없어

by 김대일

TV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식도락가와 대식가가 넘쳐난다. 세상 맛난 음식은 모두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혹은 세상 음식이라는 음식은 모두 제 입속으로 집어넣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이들은 당대의 인플루언서로 대중에게 영향력이 막대하다. 그들의 그런 섭식에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낄지 몰라도 보면 볼수록 불편하고 안쓰럽다.

삼시 세끼를 끼니때 맞춰 먹는 게 아니고 맛집 서너 군데를 달아서 순회를 하며 가는 데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일일이 맛보고선 수려한 표현으로 능수능란하게 품평한다. 혹은 어떤 이는 오늘 다 못 먹으면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겠다는 듯이 비장하고도 게걸스럽게 입으로 음식을 밀어넣는다. 그들 입장에서야 대중이 응시하는 카메라 앞에서 직업적 소명감과 철저한 프로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그 이름값 아깝지 않게 처신하는 바이겠으나 그걸 지켜보는 누군가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쾌락, 즉 먹는 즐거움이 고역으로 변질되는 상황을 목격한다는 자체가 너무 불편하다.

먹는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 면에서 식도락가서껀 대식가입네 나대는 이들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먹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바라 대거리할 계제가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 그들이 자꾸 가련해지는 까닭은 혹시 그들이 먹는 즐거움의 진정한 가치를 거세당한 채 아귀놀음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겠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자해함으로써 받게 되는 대가, 즉 금전이 그들을 그리 하도록 조종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맘모니즘의 변형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인가. 하고 보면 그런 식으로라도 그들 주머니 속이 든든해지면 그걸로 그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먹는 즐거움을 화면 밖 숨어서 혼자 즐길지 모를 일이니 괜한 오지랖이 차라라 볼썽사나워 보이긴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했던가. 아귀는 계율을 어기거나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진,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배가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귀신이다. 곳간을 채우기만 하면 그 곳간이 행여 샐까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많이 먹을 필요 없어

한 마리 생선을 뼈째 먹어봐

그럼 진짜 맛을 알게 될걸


​많이 읽을 필요 없어

한 권 책을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어봐

진짜 재미가 느껴질걸



​많이 사랑할 필요 없어

단 한 사람을 지독히 사랑해봐

그럼 진짜 사랑을 알게 될걸



가난한 나라의 넉넉한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웃음을 건넸다

- 다카하시 아유무, 「핵核」



가난한 나라의 넉넉한 사람들이 건네는 소박한 웃음이 자유이듯 먹는 즐거움의 진정한 본령을 절제와 소박에서 찾으면 어떨까. 아귀가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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