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234)

by 김대일

권태

박병란




혼자말처럼 양파에 싹 올라옵니다

몸 안에 박힌 심지 저토록 아슬해

모방을 욕망하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칼날처럼 깊다지

이미 누군가 다 해버린 말

다 써버린 일기

다시 와도 우리가 권태의 방식으로 봄을 맞는 이유란 게 이걸까



걸레는 죽은 벽시계 밑에서 마르고

아무렇게나 던져진 말이

아무도 먹지 않아 굳어버린 밥이 되는 동안

집은 빈번하게 여인숙이 되어 갑니다

모란이 없는 모란다방처럼

잠이 없는 잠의 입관처럼

우리는 양파


살얼음 속에서 노란 봄이 부패합니다

빈 집과 봄의 겸상 사이쯤에서

양파가 꿈을 꾸는 시간

내 마음에서 네 마음을 빼는 셈법 그리고 동시에 애착,

바깥은 바깥을 빠져나가고 양파는 양파를 벗겨보지만

한결같은 봄은 너무해

이제 내가 한번은 세상에 입장할 차례입니다

먹기와 집 대문 안으로

일테면 족두리 얹은 수선화의 일렬 도모처럼



('아무렇게나 던져진 말이 / 아무도 먹지 않아 굳어버린 밥이 되는 동안' 굳어버리다가 아예 쉰 밥처럼 권태로 시들어간다.

누군가 댓글에서 '글태기'가 왔나 보다며 위로해줬다. 말도 참 잘 지어내내 그 양반. 덕분에 살짝 뭉클했다. '아무렇게나 던져'지지 않아 남이 보고 댓글까지 달아줬으니까.)

작가의 이전글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