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日氣가 건조하고 음랭해지면 손님 요구는 까다로워진다. 긴 머리가 구차해 깔끔하게 치켜 올리라는 주문이 쇄도하는 무더운 계절이 일하기는 더 편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바리캉만 갖다 대면 그만이니까. 자칫 가이드라인을 침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손 "더운데 차라리 잘 됐지 뭐. 시원하고 좋구만" 손님 쪽에서 먼저 융통성을 발휘하니 우호적 분위기에 훈풍이 절로 인다. 하지만, 매서운 삭풍에 가로수 낙엽이 뒹굴 무렵이면 넉넉한 인심은 온데간데없이 180도 달라진 변덕쟁이로 돌변하는 손님이다. 계절이 바뀌어 태세 전환을 감행한 손님을 깎새 혼자서 '찔끔찔끔 손님'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구레나룻은 살려두고 덥수룩한 숱을 살짝만 정리해 달라고 치자. 그 '살짝만'이 도대체 어느만큼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손님이 단골이 아니고 그날 초면이면 '살짝만'은 손님과 깎새 사이에 커트의 적정선을 두고 양측의 대립이 첨예한, 금방이라도 드잡이가 벌어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태를 조성하는 그야말로 마지노선에 다름 아니다. 앞거울을 째려보면서 깎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손님 눈초리가 하도 매서워서 어떨 땐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 손님 다루는 데 이력이 제법 났다고 자부하면서도 그런 식의 긴장 구도는 여전히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행여라도 손님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못마땅한 짓, 즉 용납할 수 있는 '살짝만'이라는 선을 약간만이라도 넘어섰다 싶으면 남들 보기에 그 정도까지는 아닌,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표도 잘 안 난다 할지언정 점방이 떠나갈 듯 원성이 자자해지기 일쑤라.
특히 겨울이 본격적인 요즘에는 독이 오른 손님이 제법 많다. 치렁치렁한 숱을 솎으려고 숱가위를 드는 순간 쌍수를 들어 뜯어말린다거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듯 머리털이 지상가상없이 잘려 나갔다 싶으면 작업을 중단시킨 채 거울을 연신 보기 바쁘다.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안색을 살피지 않고 눈치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간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라 주의가 요망된다. 하여 그런 기미가 설핏 비치기만 해도 작업 템포를 확 늦춰야 한다. 평소 깎는 속도보다 표나게 더디거나 괜히 점방 문을 열었다 닫는다든지 창문 너머 뒷마당을 실없이 내다보는 식으로 아주 터지기 전에 과열 양상을 확 식혀야 한다.
간신히 작업을 마치고 커트보를 거두고 나서도 '찔끔찔끔 손님'은 끝까지 경계 대상이다. 두말없이 나가는 법이 없으니까. '살짝만'이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재차 삼차 확인하려고 거울이 뚫어져라 디다보는 수순은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띄면 당장 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정해진 수순이다. 손님 입장에서야 당연한 피드백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깎새 자존심에 기스를 내는 장면이다. 바리캉을 드는 순간 그가 누구건 손님이라면 예외없이 정신일도해 스타일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깎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커트보를 두 번 치게 만듦으로써 없던 분노를 유발케 한다면 김장 배추 절이듯 그 잘난 머리에다 굵은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충동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그런 '찔끔찔끔 손님'과 진탕 개싸움이나 한 판 벌일까 싶다가도 그 놈의 평판이 무서운 깎새는 자진해 자멸의 수렁에 빠지는 우를 범할 수 없다며 마스크 뒤에서만 씩씩거리다 만다. 그렇다고 갑질에 속절없이 당할 수만 없어서 소극적이나마 반항의 기회를 엿보는 깎새이긴 한데 본인이 생각해도 행상머리 한번 더럽다. 구레나룻이 짝짝이라는 둥 옆머리를 덜 깎았다는 둥 군소리를 쫑알거리다 못해 땅이 꺼져라 한숨까지 푹푹 쉬는 '찔끔찔끔 손님'이 요금은 계좌로 이체했다면서 점방 문을 막 나서려는 걸 "어,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되받고 가로막는다. 돈이야 진작에 들어왔지만(알림 소리) 받을 사람이 안 들어왔다고 뻗대는데 그냥 나가 버리면 먹고 튀는 놈밖에 안 되는 꼴이니 확인될 때까지 잠시대기할 수밖에 없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건 말건, 못마땅한 시선으로 쏘아대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영겁 같은 십여 초 정적이 흐른 뒤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던 깎새 입에서 마침내 "고맙습니다"가 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휙 나가는 '찔끔찔끔 손님'. 쌤통도 그런 쌤통이 없는 것이다. 이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