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느리게 가는 장소(2)

by 김대일

건축사를 전공한 어떤 이가 5년 전인가 전공을 살려 개발되기 이전 부산항과 영도다리에서 시작해서 1953년 대화재로 소실된 옛 부산역, 1970~80년대까지 자리를 지키다 철거된 부산세관, 상품진열관, 조선상업은행 따위를 세밀화로 그려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최윤식, 루아크, 2020)란 책을 출간했다. 지역 일간지 인터뷰에서 저자는 “인공 건축물도 오래되면 그것 또한 자연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연 파괴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이 후일 부산의 근대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국제신문, 2020.09.17).

승효상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자택인 <수졸당>과 봉화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하고 조성한 건축가이다. 그가 평생을 견지한 건축 철학은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빈자의 미학’이다. 그가 쓴 저서의 한 대목이다.


남의 집을 짓는 일이 고유 직능인 건축가라면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하면 인문학이라고 나는 주장해왔다. 물론 기술이나 공학적 요소도 있어야 하고 예술적 성취도 이루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뿐 건축을 포괄하지 못한다. 인류가 시작되어 집이 먼저 생겼지 기술이나 예술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상기하시라. 하이데거는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을 통해 장소에 새겨진다”라고 했다. 건축이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말일진대, 건축은 눈에 보이는 것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 2016, 30쪽)


지금은 사라진 부산 근대건축물을 세밀화로나마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저자나 승효상이 저서에서 밝힌 견해나 맥락은 사뭇 통한다. 인공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오래되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무, 구릉, 산 같은 자연처럼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것. 하여 건축이 곧 우리 존재 자체라서 눈에 보이는 것 이전의 문제, 인문학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 여기서 또 한번 '시간이 느리게 가는'이라는 표현을 아니 쓸 수가 없다.

어떤 장소는 한 사람 기억의 주름 속에 깊이 인상印象이 되어 그의 생각을 구축하는 기본 골격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 장소에 직면하면 그 즉시 과거의 그때로 되돌아가 과거, 현재, 미래로 계속 이어지는 불가역적 연속체라는 시간의 의미가 의미 없어지는 기묘한 경험을 겪게 된다. 표현을 수정하자. '시간이 느리게 가는'이 아니라 '시간이 일순 멈추는'으로.

2018년 초가을 전남 영암으로 향하던 55번 국도에서 광활하면서 고요해서 나라는 존재가 미미하기 짝이 없다는 처절한 자각이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평온하기 그지없었던 나주평야의 강렬한 첫인상처럼 불편한 자의식으로 괴로워하는 현실을 누그러뜨리는 따뜻한 위로, 시간이 무색한 어떤 장소는 그렇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

부산 매축지 굴다리 앞에 서면 유년 시절 흔하디 흔했던 철길과 굴다리들이 떠오른다.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출신 중학교는 부산 문현 교차로 어디쯤 있었고 아이 걸음으로 20분 정도 철길을 따라 걸어 차가 다니는 교차로 아래로 뚫린 굴다리를 지나면 나즈막한 언덕배기 학교로 향하는 통학길이 멀리서 보였다. 굴다리를 지나는 느낌은 당연하게도 등굣길과 하굣길이 전혀 딴판이었다. 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속박과 자유가 굴다리를 경계로 오락가락했음에 다름없다.

유년시절은 지지리 궁상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아귀다툼을 벌이던 가난한 자들의 무허가 판잣집과 뜨내기 손님의 호주머니 털 심산으로 징그런 교태짓을 일삼던 한물 간 노기老妓들로 북적대던 홍등가가 감만동 항구로 향하는 철로변에 포진했던 곳에서부터 영문 모를 좌절감을 생래적으로 체득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듯한 철로의 저편에서 시간을 삼킬 듯이 아가리를 벌리고 서 있던 굴다리 속을, 어둠의 터널로 들어갈 때면 자기도 모르는 포근함을 잠시나마 누리며 넌더리 나는 일상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하려는 음모를 꿈꿔보지만 늘 그렇듯 소심한 기질은 굴다리 속 포근한 어둠에 기대 그저 찰나의 안온함에 만족할 뿐이었다.

하지만 제법 조숙했었던 모양이다. 부모의 불화로 매일매일이 불구덩이 같던 현실을 망각하려고 어디서 주워들은 영국시인 바이런 시구를 읊조리면서 그를 끊임없이 동경했다. 낭만의 질풍 같은 격정에 휩싸인 십대 소년은 굴다리 속에서 ‘이제는 더이상 헤매지 말자’란 시구에 기대 이 답답한 현실은 곧 사라지고 아름다운 이상향이 나타나리란 막연했지만 간절한 주문을 걸곤 했다. 굴다리는 그렇게 불우한 어린 시절 감정의 탈출구로 함께 한 것이다.

둔중한 연혁을 품고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는 굴다리가 부산에 이제 몇 없다. 애초에 만들어지게 된 목적성을 겨우 부지하며 무심한 행인들의 통행을 종용하는 굴다리가 있는 반면 솟대인 양 마을의 상징적 존재로만 그 기능을 간신히 부여잡고 용도폐기가 잠정 유예된 굴다리도 있다. 뭐가 됐든 존재하는 모든 굴다리는 굴다리의 이쪽과 저쪽으로 대변되는 시간의 분단을 조장해 최루를 자극하는 그리움으로 사람들을 격발시킨다. 슬프고도 아련한 과거를 문득 떠올리게 하고 속절없이 흘러간 지난 시절을 되돌릴 수 없다는 소환 불가능성에 분개하면서 혹시 모를 인생의 깨달음을 굴다리 저편 희미한 빛을 반기며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굴다리는 의미심장하다.

매축지 굴다리가 말하는 성싶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전을 봐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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