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래기 도진 강아지 꼴

by 김대일

뭐가 그리 급했는지 먼저 세상 하직한 그리운 친구 L은 생전에 방학만 되었다 하면 마누라와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다. 방학이라는 긴 휴가를 해외에서 박학다문하려는 기회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부부교사다운 교육적 발상이 아닐 수 없었는데 실상 속내는 따로 있었다. 학기 중에 쌓였던 부부 사이 애욕을 방학과 해외라는 시공간적 여유를 활용해 원없이 풀기 위함이었으니. 그 덕분이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금슬 좋은 부부로 자자했더랬다. 지나치리만큼.

정기적인 이벤트로 해외여행이 자리잡은 이래로 생전 친구는 이국적인 풍경을 든든한 뒷배경으로 삼은 로맨틱한 섹스가 운우지정을 갈수록 드라마틱하게 변모시킨다면서 자랑질을 일삼아 지인들 염장을 지르다 못해 아주 아작을 냈더랬다. 오직 섹스만을 위한 외유라니, 낭만적이면서 에로틱하지만 다분히 변태적이라고 맞받아친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부터 각방을 썼는지조차 가물가물한 부부는 서로에게 무심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남편은 아주 가끔씩 아랫도리가 느닷없이 뻐근해져 오면서 한창 원기 왕성했던 무렵 그 정욕이라는 녀석이 느물거리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괜히 마누라 주변을 얼씬거려도 보고 혹여 두 딸이 약속이나 한 듯이 귀가가 늦어진다 싶음 초저녁 헬스장에서 땀 빼고 분명 샤워까지 마쳤음에도 사납게 용두질하는 녀석을 달래려 애꿎은 욕실 샤워기 꼭지만 연신 괴롭힌다. 목욕재계를 한 뒤 경건하게 합환을 바라야지 졸라서 될 일이냐 인석아. 허나 갱년기를 겪고 있는 중년부부의 섹스란 상호 호혜 원칙에 입각해 천운으로 아다리가 맞아야 겨우 치뤄질까 말까 한 법이라서 혼자 발정났다고 발광을 해대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인 데다 여차직하면 합궁은커녕 털끝 하나 못 건드리는 비자발적 금욕 생활에 내몰리는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요새는 미디어 노출이 별로 없는 정재승 교수가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내용이 떠오른다. 인간이 평생 섹스하는 횟수가 얼마인지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랄까.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나누는 섹스 횟수는 평균 5명의 상대와 2,580번이라고 한다. 물론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그 평균값은 다르겠지만. 전희를 포함해서 한 번 섹스할 때 걸리는 시간을 30분만 잡아도 우리가 평생 섹스로 보내는 시간은 약 1,290시간, 날짜로 따지면 53.75일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두 달 가까이를 섹스를 하며 보낸다.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중 <'성과학'과 만족도 연구>, 한겨레신문, 2016.11.26.)



마누라와 섹스하는 횟수를 연 단위로 세는 버릇이 생겼다. 그조차도 갈수록 버거워지는 게 사실이고. 삼십 년 가까이 살 부비며 살고 났더니 살짝만 스쳐도 는실난실 춘정이 이는 야릇함 따위는 애저녁에 사라졌다. 무안하게도 같은 얘기 또 하지만, 드물게 두 딸이 동시에 집을 비우는 절호의 기회에도 반짝 입맛만 다시다가 이내 귀찮아져서 각방하고 만다. 마음만은 여전히 왕성하야 "가족들끼리 그러는 게 아니"라는 한국형 섹스리스가 영 마뜩잖지만 실상은 고대로 답습하는 성싶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헌데도 그 성욕이라는 것이 참으로 요사스러워서 '갈래기(발정기) 도진 강아지'마냥 느닷없이 아랫도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주체하지 못할 때는 어떡하든지 해소를 해야 밤잠이 편하다. 그렇다고 각방하는 마누라 건드릴 용기는 없으니 바늘로 제 허벅지 살을 찔러 대며 동짓달 긴긴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던가 관음증적 호기심으로 음탕한 광경을 들여다보면서 성적 흥분을 달래든가(야동) 이도 저도 형편이 궁하면 섹드립이라는 성적 유머나 보면서 혼자 시시덕거리는 수밖에 없겠다. 요새 좀 거시기한가 보다.




한 남자가 백화점에 들어가서 점장을 만나 부탁한다.

- 저를 고용해 주십시오. 저는 세계 최고의 판매원입니다.

점장이 대답한다.

- 미안해요. 자리가 다 찼어요.

- 저는 세계 최고의 판매원이라니까요.

- 아무리 그래도 자리가 없는데 어쩌겠어요?

- 점장님이 어떤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하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보수를 안 주셔도 좋으니 일단 저를 시험 삼아 써보십시오. 그러면 세계 최고의 판매원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점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튿날 점장은 궁금증을 느끼며 <세계 최고의 판매원>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러 간다. 마침 그 임시 판매원이 한 남자 고객을 상대로 설득을 벌이고 있다.

- 이 파리 모양의 낚시바늘은 수백 번이라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최고예요. 그리고 이 낚싯바늘은 이런 낚싯대와 특히 잘 맞죠.

손님은 낚싯바늘과 낚싯대를 사는 데에 동의한다.

- 그런데 낚싯바늘을 넣어 가지고 다니시려면 조끼가 필요하지 않으시겠어요? 마침 판촉 행사 제품으로 나온 조끼가 있어요. 주머니가 여기저기에 많이 달려 있어서 아주 편리한 제품이죠.

손님은 조끼도 사기로 한다.

- 그다음엔 선글라스가 필요하실 겁니다. 강물에 햇살이 반사되어서 눈이 따가울 염려가 있거든요. 이 선글라스를 사세요. 가장 비싸긴 하지만 이게 최고예요.

손님은 선글라스를 받아 든다.

- 그런데 정말로 큰 물고기를 잡고 싶다면 강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들어가셔야 해요. 그러자면 작은 보트가 필요하죠.

손님은 그를 따라 보트 매장으로 가서 한 척을 구입한다.

- 한데 보트가 있으면 트레일러가 필요할 겁니다. 트레일러가 없으면 보트를 옮길 수가 없으니까요.

손님은 내친김에 트레일러도 구입하기로 한다.

- 한데 트레일러를 끌기 위해서는 힘 좋은 자동차가 필요할 겁니다. 손님의 자동차는 힘이 좋은가요?

판매원은 손님을 자동차 매장으로 데려가서 매우 값비싼 사륜구동 자동차를 사게 만든다.

손님이 모든 구입품에 대한 계산을 끝내고 나자, 점장은 판매원에게 다가간다.

- 오케이, 세계 최고라고 장담하더니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네요. 낚싯바늘을 파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고급 사륜구동 자동차까지 팔았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저 손님이 처음에 사러 왔던 물건은 뭐였나요?

- 자기 아내를 대신해서 생리대를 사러 왔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어차피 사모님과 함께 주말에 재미를 보기는 글렀으니, 낚시나 하러 가는 게 어때요?> 하고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웃음 1』, 열린책들, 2011, 331~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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