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에 나온 눈

by 김대일

마음 주머니에 소중하게 보관해 뒀다가 이해와 연대의 소중함이 절실할 적마다 다시 꺼내 읊조리는, 종교가 없는 깎새한테는 불경이자 성경이며, 쿠란, 토라, 탈무드, 우파니샤드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면서 돌이켜 살피고 반성케 하는 도구이자 궁극적으로는 지혜를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하는 책이 있다. 거기서도 가장 음미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숱한 사연과 곡절로 점철된 내밀한 인생을 모른 채 단 하나의 상처에만 렌즈를 고정하여 줄곧 국부局部만을 확대하는 춘화적春畫的 발상이 어안魚眼처럼 우리를 왜곡하지만 수많은 봉별逢別을 담담히 겪어 오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묵직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견실함을 신뢰하며,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함을 감사하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다시 만나지 말자며 묵은 사람이 떠나고나면 자기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체험을 등에 지고 새 사람이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의 친구들이 죽어서,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귀었노라.

용서를 바란다."

모블랑의 시는 차라리 질긴 슬픔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따라하지 못하는 경지라서 더욱 절실하다. 절실하니까 꼭 이르고 싶은 경지다.

휘어서 꺽인 마음을 바로 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맹목적 왜곡은 꽤나 완고한 난공불락이니까. 그 철옹성을 깨부수는 비책은 자기 안으로부터 생기는 틈이 점점 갈라져 터지는 수밖에 없다. 그 틈은 마치 물 밖에 나온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직시直視와 같다. 직시하면 겸허해진다. 그걸 배우려 한다.



굴절

이승은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 속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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