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게 나이를 세는 표현을 부쩍 자주 듣는다. 이를테면 "제 나이 스무 살입니다"를 "제 나이 이십 살입니다"로, '쉰 다섯 살'을 '오십오 살'로 말하는 식이다.
여태껏 나이를 세는 단위 '살'은 '하나, 둘, 셋, 열, 스물, 서른' 따위 고유어 뒤에, '세歲'는 '일, 이, 삼, 십, 이십, 삼십' 따위 한자어 뒤에 붙여 써야 입에 착 달라붙고 듣는 이도 어색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근자에 이를 혼용하는 경우를 공식적인 방송, 동영상에서 자주 확인한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리 말하는 이들도 어렸을 적부터 '고유어 뒤엔 살', '한자어 뒤엔 세'라고 배웠고 입버릇이 들 대로 들었을 텐데 생게망게한 짓을 벌이는 그 까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말본새가 좀 이상한데'라고 스스로 느낄 게 뻔한데 말이다.
언어의 특징 중에 자의성과 사회성은 서로 배치된다. '사과'라는 소리와 '사과'라는 사물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하여 '사과'를 대체하는 소리가 통용된다면 바뀔 수 있다는 게 '자의성'이다. 반면에 '사과'라고 통용됐으면 제 아무리 언어적으로 별쭝난 생각을 가진 자가 나타나 '사과' 대신 다른 발음으로 바꾸자고 우긴들 가차없이 무시되는, 사회 구성원 간의 약속이 곧 '사회성'이다.
'고유어 뒤에 살', '한자어 뒤에 세'가 오랫동안 지켜온 언중 사이 약속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통용하는 게 편하고 유용해서일 테다. 언어의 사회성이 작동한 바다. 그런데 가악중에 '살'과 '세'를 혼동해서 쓰는, 암만 좋게 들으려고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자의성'이라는 미명 하에 통용시키려는 시도를 방관만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언어의 자의성' 역시 결국 언중 사이에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성'과 마찬가지인 바니까. 그런 차원에서 '스무 살'을 '이십 살'로, '쉰 다섯 살'을 '오십오 살'로 말하고 듣는 게 언중 사이에서 타협이 가능한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누가 이 따위 어색하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한 나이 세는 법을 퍼뜨렸을까? 무슨 의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