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주인장을 향해 그런 불필요한 확인 과정이 번거롭지도 않느냐는 듯이 득의양양하게 주민증을 내밀 나이가 된 딸내미와 선술집에서 술잔 기울이고픈 게 딸 가진 아비라면 누구나 품는 로망이다. 그 로망을 지난 금요일 저녁 두 딸이 이뤄 주었다. 1차 치킨가게에 이어 2차 실내포차를 들렀을 때 예외없이 막내딸 신분증을 확인하는 건 물론이고 몸피 앙증맞은 데다 앳되 보이기까지 한 스물여섯 살 큰딸까지 막내딸 동생인 줄 알고 재차 삼차 확인하려 드는 해프닝은 아비 로망을 더욱 극적이게 만드는 연출이었다.
곧잘 마시더라. 술자리 국룰이라는 소맥도 너끈했고 주종도 제가끔 확고했다. 이를테면 큰딸은 소주파, 막내딸은 맥주파로. 술자리에선 술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돼먹잖은 주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안주 시키는 족족 복스럽게 순삭하니 흐뭇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대접받는 사람이 탐스럽게 먹고 마셔 줘야 대접하는 사람 선심이 빛을 더욱 발하는 법인데 내 딸들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재능이 타고났다. 또, 먹고 마시는 중에 떠들어대던 온갖 수다들은 사랑의 속삭임을 방불케 하듯 감미로웠다. 꼭 마누라와 연애하던 시절 꽁냥꽁냥하던 장면과 겹친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가슴 벅찼는지도 모른다. 오가는 대화의 밀도는 또 어떻고. 무거운 내용은 무거운 대로 진중하게 받아들이다가 이내 피식 싱거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가벼움이 서로 넘나든다. 술김에 나온 취중진담이 은밀하다가도 그로써 그간의 오해가 순식간에 해소되는 효과는 뜻밖의 수확이고. 유익하고 유쾌한 술자리를 애먼 데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이치라는 게 양면적이다 보니 아직 닥치지도 않을 일에 서글퍼지는 건 어인 조화일까. 이런 술자리를 얘네들과 과연 얼마나 가질 수 있을지, 품 안에 있어야 자식이랬다고 다들 둥지 떠난 뒤에도 지금처럼 오붓하게 웃고 떠들 수 있을지, 딸내미들 떠난 자리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도무지 방법을 찾지 못해 울적해할 늙은이의 미래가 바로 코앞인 듯해 뒷맛은 영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