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생사의 문턱을 넘어 사라져야 할 때가 분명 온다. 산 날보다 살 날이 점점 짧아지자 부친은 입버릇처럼 되뇌곤 한다. 바람이 아니라 거의 주문이다.
'자는 잠에 뜨고 싶다'
걸핏하면 튀어나오는지라 감흥이 별로 없지만 어떤 시인은 그 주문을 이런 시로 승화했다.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 윤재철,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중에서)
근데, 자는 잠에 뜨든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뜨든 전제는 같다. 시인은 말한다.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 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같은 시)
혼자 죽어 외로우니까 외로운 연습을 해둬야 편하게 하직할 수 있나 보다. 그렇다면 점방 한 구석에 옹송그린 채 초점없는 시선으로 허공만 바라보는 이 지루함조차 외로워지는 연습으로는 안성맞춤일지니. 외로운 내공이 차곡차곡 쌓이면 언젠가 자는 잠에 편히 뜰 수가 있을 게다. 발가락 닮은 아들 바람은 늙은 아비를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