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떨어지세요!" 글투

by 김대일

예전 직업상담사로 상담 창구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하루는 오후에 허기가 져 군것질거리가 없나 하고 여기저기 다른 창구를 어슬렁거렸다. 그걸 본 한 동료 상담사가 두유 한 팩을 건네면서 호령하듯, “먹고 떨어지세요!” 했다. 하도 야멸차서 서운할 법도 했지만 의외로 얼음 꽉꽉 채운 아이스박스에서 갓 꺼낸 사이다를 들이켠 듯 청량감이 확 몰려 들었으니 그 역설이 실로 쌈박했다!

“이거라도 마시면 궁기가 덜 할 테니 얼른 잡수세요”나 “퇴근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따위 군말치레나 주워섬겼다면 감흥이 별로였을 테다. 그냥 주자니 섭섭해 툭 던진 입말과 두유 팩을 건네받으면서 포착한 그 동료의 장난기 어린 표정은 일종의 덤으로 묘하게 어울리면서 자칫 서먹함에 일그러질지 모를 증여의 장면이 유쾌함으로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먹으라고 준 두유를 한동안 먹지 않았다. 팩만 보면 그 입말이 자꾸 떠올라 먹지 않고도 이미 배가 불렀고 자꾸 낄낄대느라 정신을 못 차려서였다. 꼭 미친 놈마냥 말이다.

김영민 교수 글투가 딱 그짝이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라 읽는 게 일단 재밌다. 그런데 그렇게만 포지셔닝하면 글은 재밌을지 몰라도 남는 게 없다. 하지만 글 속에는 웅숭깊은 지혜와 식견이 담겨 있다. 하여 한번 매료되면 안 먹고도 배가 부른 두유랑 똑같은 효과를 낸다.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글을 어제 소개했다. 약간 딱딱했을 게다. 똑같은 의미를 다르게 재밌게 풀어나가는 대목을 오늘 또 소개할까 한다. 예시를 활용했는데 그 예시가 참으로 탁월하다. 어제 글을 다시 펼쳐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이러한 자아의 한계에 대한 실험은 졸업 사진을 찍는 현장에서도 벌어진다. 졸업을 앞둔 많은 학생들은, 사진촬영 당일 아침에 미용실에 가서 일생에서 가장 진한 화장을 하고 캠퍼스에 나타난다. 대학 시절 내내 그 학생들이 그 정도로 화려한 화장과 스타일링을 한 것을 본 적이 없기에, 나는 그 학생들이 다가와 인사를 해도 누군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이 무작정 자신을 탈바꿈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졸업 사진이 갖는 딜레마는 자신이 최대한 예쁘게 나와야 하는 동시에, 대학 시절 기록물이므로 자신이 누군지 알아볼 수는 있게끔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예쁘게 찍히지 않고, 지나친 화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심하게 왜곡해 버리면, 아무도 졸업 앨범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화장을 하며 자아의 한계에 대해 묻는다. 어디까지 화장을 할 때, 나는 내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 졸업 사진이란 그런 자아의 한계를 탐구한 예술적 재현물이다.(『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사회평론, 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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