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작가는 한글 자음 14자와 모음 10자가 각각의 장이 되어 총 24개 장으로 구성한 산문집 『언문세설』(새움, 2013)을 냈었다. 각 장에서는 해당 자음 혹은 모음의 이름과 기원, 소리와 그 느낌, 규칙과 활용, 비슷한 단어의 미묘한 차이, 관련하여 인상적인 시 등이 담겨 있어서 고종석이 쓴 한글에 대한 사전이자 그가 즐긴 한글 스물넉 자와의 놀이라고들 한다. 우리말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에세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가장 기본적'이려면 그것에 관해 누구보다도 해박해야 한다. 많이 알고 잘 알아야 발랄하면서 진지한 내용을 쉽게 담을 수 있다. 그래야 읽는 이를 납득시킬 수 있고.
고종석이 우리말 자모음으로 시도했듯 숫자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그러니까 발랄하면서 진지한 내용을 담은 글들이 어디 없을까 탐색하고 싶었다. 0부터 9까지 10개 숫자로 즐기는 언어 유희, 즉 숫자 놀음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게 틀림없는데, 지금까지 겨우 두 개 찾았다. 우선 숫자 '2'와 '9'다.
얼추 구색이 갖춰지면 다양한 사람이 쓴 숫자 놀음에 관한 옴니버스 에세이를 엮는 셈이니 흥미진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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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의 사이시옷] 소수 '2'에게 짝수가 되어주는 수학의 세계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입시교육에서 해방된 후에도 가끔씩 수학시험을 치는 악몽을 꿨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무한한 숫자들 속에서 내 미래를 쥐고 있는 듯한 단 하나의 숫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 무거운 중압감이나 초조함에 시달리는 일이 생길 때면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수학시험지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있곤 했다.
그 꿈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단순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서만은 아니었다. 나와 달리 수학을 무척 잘했던 한 친구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며 법학과에 갔지만, 후에 전공을 바꿔 이과 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친구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놓고 씨름해야 하는 것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살다보니 세상은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보다 더 무서운, 정답이 없는 문제투성이였다. 공식도 없고 해답지도 없으니, 틀렸다는 것을 알아도 어떻게 다시 풀어야 할지 헤맬 수밖에 없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수학시험 치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학 공포증에서 벗어났다 해도 숫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 입시교육에서 정답을 맞히는 수학이 등수를 가르는 데 최적화된 도구였다면, 답도 없는 사회생활에서 숫자는 인생의 성적표였다. 한 사람을 설명하는 숫자의 꼬리표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현란하게 복잡해졌다. 월급 액수, 아파트 평수, 자식의 등수, 자동차의 크기, 입고 차고 신고 다니는 양복과 시계와 구두의 가격. 숫자는 골치 아픈 수학의 언어만이 아니었다. 숫자는 곧 속물의 언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수학과 숫자를 오해해왔다. 오가와 요코가 쓴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이 소설에서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노교수는 가사도우미의 생일이 2월20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렇게 말한다. “220, 정말 귀여운 숫자군.”
그리고 자신의 손목시계를 풀어 숫자판 뒤에 새겨진 ‘학장상 No. 284’란 글자를 보여준다.
“220과 284라구.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한,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사람과 사람을 갈라 구분하기 위해 쓰였던 숫자는 사실 이렇게 서로를 연결해주는 은밀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단지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숫자는 돈을 셀 때나 사람을 줄 세울 때만 쓰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숫자 ‘2’에 대한 설명이었다. 교수는 가사도우미의 어린 아들에게 1에서 100사이의 소수를 써보라고 한다. 2, 3, 5, 7, 11, 13, 17, 19, …, 97. “그래, 어떻게 생각하니?” 교수가 묻자 아이가 대답한다.
“다들 제멋대로예요. 그리고 2만 짝수고요.”
“그렇지. 소수 중에서 짝수는 2, 딱 하나뿐이다. 소수번호의 1번 타자, 리드오프맨은 혼자 선두에 서서 무한한 소수를 이끌고 있는 것이란다.”
“외롭지 않을까요?”
“아니, 걱정할 것 없다. 외로워지면 잠시 소수의 세계를 떠나 짝수의 세계에 가면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1’이 되지 못한 ‘2’는 우리 사회에서 늘 애석한 숫자에 불과했지만, 수학의 세계에서 바라본 ‘2’는 이토록 멋진 숫자였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으로 아름답듯이 모든 숫자도 저마다 아름답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 사람들에게서 숫자를 연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오체투지를 하는 장애인들, “벼랑 끝 하청 노동자에게 살길을 열어달라”며 0.3평 철제 감옥을 용접하여 스스로를 가둔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동자를 볼 때 나는 외롭게 선두에 서서 무한한 소수를 이끌고 있는 숫자 ‘2’를 떠올린다. 그리고 외로워진 그들이 소수의 세계를 떠나 짝수의 세계에서 친구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혼자보다 함께 공부해야 멀리, 깊이 갈 수 있다”고 했다. 수학이 그렇듯이 우리가 사는 사회도 숫자 ‘2’에게 짝수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모두 함께 더 멀리, 깊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경향신문, 2022,07.14)
<9>
열은 끝이 있어도 아홉은 끝이 없는 수여. 그래서 열버덤 많은 수가 아홉인겨. 아홉은 가장, 맨, 제일 같은 무한량 무한대 무진장인 것들을 가리킬 때 써먹는, 수가 없는 수니께. 하늘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민九旻이구, 땅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인九仞이구, 땅에서 가장 짚은 디는 구천九泉이구, 넓디넓은 하늘은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구, 넓디넓은 땅덩이는 구산팔해九山八海구, 나라에서 가장 큰 관가는 구중궁궐이구, 또 가장 큰 민가는 구십구간이구, 집구석만 컸지 살림살이가 무진장 쪼들렸으면 구년지수九年之水이구, 그래서 수없이 태운 속은 구곡간장九曲肝腸이구, 그러면서 수없이 죽다 살았으면 구사일생이구, 그렇게 수없이 넴긴 고비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이구, 그러다가 셈평이 펴이구 두구두구 먹구 살 만치 장만해뒀으면 구년지축九年之蓄이구… 암, 열버덤 열 배는 더 큰 수가 아홉이구말구. 참말루! (이문구,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문학동네, 2000, 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