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한 재개발

by 김대일

건축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문외한임에도 건축에 관심은 많다. 특히 사람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땅 위 구조물이라면 어떤 미덕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고상하게 표현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건축가에 눈이 가고 마음이 더 쏠린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신념을 가지면 더 무서운 법이라지만, 건축물은 거기서 사는 사람과 잘 어울려 서로 조화롭게 영위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물신적 목적에 영합하기보다 삶의 일환으로써 거주인과 공존하며 풍경을 이루는 곳,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비었어도 그조차도 삶을 조직하고 삶에 관한 이야기로 융합되는 그런 곳. 아파트 단지 난립이 야기하는 '정체불명의 주거양식이 우리의 오랜 기억을 지우고 아름다운 풍경을 무너뜨리는'(승효상) 데 안타까워하는 한 사람으로 깎새 점방이 있는 동네 재개발이 당장 내일부터 진행될 것처럼 소문이 또 무성해지면 무조건 뜯어내고 새로 짓는 게 능사가 아니고 거기 그 구조물이 시대를 어떻게 안아왔고 거기에 살던 이들과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이뤘는지를 곱씹는 데서부터 건축이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속으로만 절규하곤 한다.



건축설계라는 일이 남의 삶을 조직해 주는 것인 만큼, 건축가가 좋은 집을 설계하고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 남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문학과 영화 등을 보고 익혀야 하며, 과거에 어떻게 산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추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를 알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므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어야 한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승효상, 안그라픽스, 2012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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