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표현해서 하드 파워hard power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박질이고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역량이다. 실제로 맞서 싸워 구마적을 종로 주먹판에서 퇴장시킨 김두한의 하드 파워는 대단했다. 허나 그 뒤로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유난히 널리 알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광휘로 해서 사람들이 알아서 김으로써 매일 싸우지 않고도 우두머리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김두한의 출신 배경은 이데올로기가 되고 사람들의 흠모를 끌어내는 매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소프트 파워다(김영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어크로스, 2021, 60~61쪽 참고). 그런 의미에서 소프트 파워는 막강한 영향력이다.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예가 여기 있다.
실제로 나는 음식 주문에 관한 한 놀라운 소프트 파워를 가진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그는 자기 음식 주문을 알아서 할 뿐 아니라 내 음식 주문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게 제철 음식인데, 이게 혈액순환에 좋은데, 이게 감칠맛이 있대.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덧 그가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막상 먹어보아도 결과적으로 맛이 있으므로, 나도 그의 주문에 큰 불만을 갖지 않게 된다. 실로 그는 식탁의 지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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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인플루언서는 전문성이 있어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게 아니라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에 인플루언서가 된다. 이 단계가 되면 그는 명함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적는 대신에 그냥 인플루언서라고 적으면 된다. 그가 시킨 음식은 맛이 있기에 인플루언서가 되는 게 아니라 그가 시킨 음식이기에 그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 궁극의 달변가는 달변을 통해 그가 달변가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어눌하게 말하면, 진정한 달변이란 눌변을 포함하기 마련이라고 달변의 정의가 바뀌게 된다. (위의 책, 63~64쪽)
깎새는 지금 자기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심을 하고 앉았는 중이다. 손님들로 하여금 '우리는 왜 머리털을 정기적으로 깎아야 하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자의식을 유발시켜 최소한 이 근방에서만큼은 깎새가 아니면 내 머리털을 맡길 장인이 별로 없는 관계로 그 점방이 아니면 아니 되는 무조건적인 의존, 비록 요금 단돈 5천 원이라는 쌈마이 전략이 아니더라도 손님 스스로 깎새 점방을 선택한 것이 탁월했노라는 자부심을 뿜뿜 일게 하는 소프트 파워, 즉 김두한 뒤에 김좌진 장군이라는 후광이 있듯 아버지대를 이어 꽃피우는 장인정신을 이데올로기로 승화시킬 방법이 혹시 있을지, 혹은 다른 원장 누가 뭐라건 간에 깎새가 "당신 머리 스타일은 이거야"라고 지정하면 백번 천번 지당하신 영도라고 믿어 버리는, 손님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인증받는, 최소한 부산진구 가야동과 개금동에서만큼은 깎새가 아니면 커트를 논하지 말라는 궁극의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한 묘수가 없을지 시답잖게 머리를 싸매고 앉았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 알고 보니 가공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