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도 낭만인 적 있었다

by 김대일

'여행 유튜버'니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란 호칭 이전에 '나그네'라고 있었다. 요즘에는 자주 쓰지 않는 단어이긴 하나 안 쓴다고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게다. 국어 교과서에서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그네는 '나가다'의 '나가'에 사람을 뜻하는 내(네)가 붙은 말이다. 나간 사람, 즉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에선 정의내리고 있다. 여행이랍시고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콘텐츠를 생산해 유명세를 타는 여행 유튜버,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 역시 제 집 놔두고 사서 고생하는 걸로는 도긴개긴이니 나그네의 최신 버전쯤 되겠다. 다만 여행을 빙자해 싸돌아다닌다는 점에서는 오십보백보일지 모르겠으나 나그네와 그 종이 갈리는 결정적인 차이는, 예전에는 대체로 실연의 아픔이랄지 일신상의 중대한 변화 따위를 삭이기 위한 청승 무마용으로 동가식서가숙하는 떠돌이 생활을 자청한 반면 여행에 꽂힌 덕후가 세상을 유람하면서 얻은 견문을 창의적이고도 경제적인 콘텐츠로 치장해 대외적으로 알려 실익을 챙기는 생산의 일환으로써 요즘 여행을 정의내린다는 데 있다. 생산적이란 표현이 적확한 게 콘텐츠를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 덕에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도 될 돈도 벌고 유명세까지 타는 여행 유튜버 인기가 여전히 식지 않고 있으니.

그런데, '영포티'나 '영피프티'나 나잇값 못하고 젊은 척 과시하는 꼴은 오십보백보라는 자위가 지랄발광인 양 젊은이들을 따라하고 그 취향을 온전히 취해 보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다른 건 모르겠고 여행에 관해서만은 추종하고 싶은 마음이 영 들지 않는 건 어이 까닭일까. 캐리어에 뭘 담을 건지부터 고민의 고민을 해대며 떠나기 전부터 난리부르스를 떠는 사전 준비부터 생리에 안 맞을 뿐더러 분초까지 따지며 행선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질 않나 거기 토속음식이랄지 특산품 죄다 맛보고 즐기고 말겠다는 다사다망하기 짝이 없는 일정, 서브 휴대폰 저장공간이 다 차게 기념사진과 동영상을 양산하기 위한 일환으로 여행을 소모하는 건, 글쎄 백번 양보해 다 수긍한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뭔가가 빠진 듯해 결국 호응할 수가 없다.

예전 나그네는 정처도 없고 목적도 없이 떠나곤 했다. 아니, 실은 목적이 있었다. 정주해 감당하자니 너무 벅찬 설움, 아픔을 외면하거나 떨쳐내 보려는 허튼 몸부림의 일환이 목적이라면 목적이겠다. 청승맞기 이를 데 없는데도 그 목적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그런 나그네가 굳이 경의롭고 경외로워 보여 그와 동행하고픈 욕망이 세차게 일어났던 까닭은, 낭만이었다. 그렇다. 요즘 여행엔 그런 낭만이 별로 안 보여 영 맞갖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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