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조선 3대 구라'를 일컬을 때는 뛰어난 입담과 대중을 사로잡는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무장한 걸출한 이야기꾼들을 의미한다. 그 3대 구라의 핵심 격은 통일운동가이자 입담꾼이었던 백기완이다. "스케일이 엄청나고 웅장하면서도 때론 비감"해 '대륙형 구라'라고 했다.(곽병찬, <향원익청香遠益淸-방배추, '주먹은 통쾌했고 구라는 시원했다'>, 2016. 12.21. 에서)
다음은 소설가 황석영. "육담으로 질척거리는" '뒷골목 구라'라고 했다. 마지막은 '방배추'라는 별명을 가진 협객으로 유명한 방동규. 본인 구라에 대해서 스스로 '인생파 구라'라고 정의내렸고 황석영도 인정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현대사의 압축판!"(위 칼럼)
이들에 필적하는 신흥 구라 3인방이 떴다고 했다.
한 번은 황석영이 '라지오'(조선 3대 구라를 구비문학파 또는 라지오파라고도 했단다)를 틀었다. "배추 형님, 요즘 조선 3대 구라는 갔다고 합니다. 백구라(백기완), 방구라, 황구라 대신 신흥 구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거예요. 으핫핫." "신흥 구라? 맨 앞이 누군데?" "유홍준이 만만치 않습니다. 백만 권 이상이 팔려나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해져 동네방네에 라지오를 풀고 다닌다는데···." "걔가 무슨 구라꾼이야? 글쎄, 교육방송쯤이면 딱이겠지. 인생이 없잖아." (위 칼럼에서)
이로써 신흥 구라는 '교육방송파'가 됐다. 참고로 교육방송파 3대 거두는 이어령, 유홍준, 도올 김용옥이다. 방구라가 깔본 까닭이 있다.
10대에 돼지 장사를 했고, 채석장 인부, 파독 광부, 파리의 집시, 중동 노가다도 해봤다. 패션 양장점으로 성공하기도 했고, 중국집이나 신발 가게도 경영했고, 중국 청도에서 공장 사장도 했다. 박정희 정권 때는 간첩으로 몰려 수감됐다. "인생이 없는데 무슨 라지오냐. 교육방송이지." 혹은 "몇 달이나 노동 해봤어?" 이 한마디에 당대의 '구라' 유홍준도 황석영도 '깨갱'했던 이유였다.(위 칼럼)
구라가 알차려면 그 속에 인생이 꽉 차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다. 파란만장하기만 인생이면 거칠 수가 있다. 하여 남다른 경륜을 받쳐주는 지성까지 겸비해야 구라는 근사해지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 법이다. 모르는 것 같아도 사람들은 다 안다. 말하는 상대가 근사한 구라꾼인지 얄팍한 수다꾼인지를. 말은 그 사람 됨됨이를 대변한다. 말하는 본인은 정작 못 느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