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한국 정착기를 다룬 한 TV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포레스트라는 미국인은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유골을 뿌린 데서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었는데 야구에 진심이었던 아버지와 캐치볼하는 사진을 영정으로 놓고 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에 쓰던 포수 헬멧까지 챙겨와 조촐하게 제사상을 차리고선 아버지를 추억했다. 생전에 맏아들인 포레스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울먹이다가도 쉬지 않고 되뇌이는 "아버지, 사랑해요"라는 말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포레스트: 항상 "포레스트, 네가 자랑스럽다" 그런 말씀 많이 하셨는데 (그런 말들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저도 자랑스러웠어요. 아빠 같은 아빠가 있었으니까. 아버지, 잘할게요!
립서비스가 후하기로는 서구 사람을 따라갈 자가 드물다. 그래서인지 특히 포레스트 입을 빌어 아버지가 늘상 칭찬해 마지않던 "네가 자랑스럽다"란 입버릇이 유난스럽지 않았던 건 서구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 대화에서 걸핏하면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공치사가 남발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해서이지 싶다. 별일 아닐지언정 그 자그마한 성취를 부풀려 인정해 주는 이쁜 말버릇을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듣고 자라서였겠으나 살짝 부러우면서도 부끄러웠던 까닭은 암만 돌이켜봐도 심부름을 잘했다고 해서, 이웃어른께 공손했다고 해서 "네가 자랑스럽다"를 대놓고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밖에 기억이 안 남아서리. 철이 들어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생색이 날 만도 하지만 가장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인 양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게 다반사라 동기부여 책을 수백수천 권을 읽는다 해도 자존감 상승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아 섭섭하기 짝이 없다. 듣기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비위가 상하는 법이라지만 자랑스럽다고 북돋워 주는 표현은, 글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사람을 계속 고양시키는 마력을 지녔다.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야겠지만.
꼭 자랑스러운 짓을 확인하고서야 추켜세울 필요는 없다. 설령 자랑스러워 하기에는 아직 미진해 보이더라도 자랑스러워함으로써 틀림없이 자랑스러워진다고 확신을 심어주는 속깊은 배려가 사람을 더 앙양할 게 분명하다. 나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을 "네가 자랑스럽다"를 의도적으로라도 자주 입길에 올려 아예 말버릇으로 정착시켜야 하는 까닭은 남이 들어 앙양되는 거면 스스로 말하면서 앙양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 싶어서다.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