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한Als ich kan

by 김대일

15세기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자신을 그린 <붉은 터번을 쓴 남자의 초상화> 액자 하단에는 '얀 반 에이크가 나를 만들었다'고 써 있단다. 이는 자화상이란 단어가 없던 시절 자화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또 그 액자 위쪽에는 "내가 할 수 있는 한(Ala ich kan)"이라고도 쓰여져 있단다.

기름에 안료를 섞어 그리는 유화를 활용해 이전 시대 그림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부드럽고, 반짝이는 고급스러운 물건들의 질감을 휘황찬란하게 표현할 수 있었음은 물론 더 정밀하고 섬세하면서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로써 터럭 하나의 진실도 놓치지 않겠다는 탐구심으로 반 에이크는 인물화를 그려냈던 것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1434)란 그림을 보면, 신랑과 신부 뒤쪽에 걸려 있는 볼록거울에는 맞은편에 서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중 붉은 터번을 쓴 남자는 화가인 반 에이크다. 이는 "반 에이크가 이곳에 있었다"고 대범하게 선언하는 것이고 이로써 화가는 아르놀피니라는 사람의 결혼의 증인으로 나서며 자신이 진실의 기록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눈이 보고, 그가 그린 것은 믿을 만한 증언력이 있는 것이다.(이진숙,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반 에이크, 모더니티 역사의 출발점이 된 그림>, 경향신문,2018. 07.09. 에서)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반 에이크가 추구한 지독한 핍진성으로 미루어 그의 자화상 액자 위쪽에 쓰여진 문구 뒤에 어떤 문장이 생략되어 있는지 다음과 같이 짐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가 본 것을 모두 완벽하게 그리겠다!



미술평론가가 쓴 같은 연재물에 등장하는 요한 하위징아의 말,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개성의 밑바닥까지 파헤친 묘사"는 핍진의 의미를 새삼 숙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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