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세운 원칙에 대단히 완고한 손님이 있다. 개인택시를 모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인데 아침에 나가 저녁 식사 전까지는 그날 운행을 꼭 종료한단다. 체력적으로 달리는 물리적 제약도 이유이겠지만 야간 운행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이를테면 취객과 실랑이를 벌여 생길 감정 소모를 아예 차단함으로써 심신의 안정을 알아서 찾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거기다 목요일과 일요일, 일주일에 이틀은 무조건 쉬는 날로 정해 즐겁게 논다고도 했다. 술 마시길 좋아해 목요일 전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퇴근해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만든다는데 술맛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나. 산 타는 것도 좋아해서 노는 날마다 안 가는 산이 없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여생이 없다는 것이다. 회를 유독 좋아하는 마나님을 위해 단골 횟집 예약을 걸어 둘만의 오붓한 저녁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듣고 있던 깎새는 깎새가 슬기로운 노년 생활의 전형을 보는 듯해 매료되었다.
댁처럼 유유자적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영도해달라 간청했더니 그런 일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경제적 여건 마련에 방점을 찍었다. 낮에만 택시를 몰아서 다 감당이 되겠느냐 되물었더니 개인택시해서 벌어봐야 100만 원, 많이 벌면 150만 원이지만 거기에 연금을 합치면 월 250만 원 가량 된다. 출가한 아들내미 둘 다 제 집 마련해 따로 나가 살아서 자식 밑으로 돈 들어갈 일 없으니 그 정도로도 노부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이 여생을 남부럽지 않게 편히 보낼 자신이 있다고 하자 깎새 두말없이 수긍했다.
점방을 나서는 나이 지긋한 손님 뒷모습에다 대고 깎새가 어르신 나이쯤 되었을 때 그처럼 과연 재미지게 노년을 구가할 수 있을지 겹쳐봤다. 깎새란 직업을 평생 업으로 삼았으니 늙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개인택시 기사와 별반 차이가 없겠다. 점방에 얽매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점에서 일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단지 일상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즐길 만큼 수입이 받쳐 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답보 상태가 이어지는 매상이 그렇고 가리늦게 국민연금을 최소액으로 납부하고 있지만 소싯적 빼먹은 횟수가 너무 많아 예상 연금액이 턱없이 작은 게 문제다. 대학원을 진학해 학업을 이어갈 큰딸,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막내딸과 로맨스그레이 손님의 두 아들 형편은 또 너무 다르고. 개인적으로 술 마시고 놀고 싶어도 함께 즐길 친구는 별로 없고 나이를 먹을수록 취향, 기질이 점점 더 벌어지는 마누라와 단둘이 오붓하게 외식을 즐기는 것 자체가 어쩌면 서로에게 큰 도전이자 스트레스로 작용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다른 이의 안온한 노년을 자기한테 바로 겹치는 게 어처구니 없는 짓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택시 손님을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노년상으로 본다면 암만 아등바등한들 그 근처에도 못 갈 낙제생인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걸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의 신상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도 점방 문 열고 들어오는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왠지 모르는 동경부터 이는 손님은 분명 있다. 살살 어루어 실토하게 하는 삶의 전모를 들어보면 무사하고 안락한 삶을 구가하지 않는 이가 없더라.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안온한 삶이란 어떤 삶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이들에게 야코가 죽기 마련이다. 설령 지체가 안 높아도, 떼부자가 아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