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제거 수술을 한 개인택시 기사는 가료 중이다. 회복이 많이 되었다고는 하나 병원에서는 택시 운행만은 자제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럼에도 오전에 잠깐씩 운전대를 잡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가오를 세우기 위한 일환임을 구구절절하게 듣지 않아도 짐작할 만하다.
그의 아들은 군 제대 후 복학을 했지만 아비의 급작스런 병고로 학업까지 제쳐두고 병시중에 매달린다. 엄마도 있고 누나도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막내아들만 아비를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은 장하면서도 아리송하다. 그 부자가 대목 앞에 점방을 찾았다. 아들이 엄마 심부름으로 근처 시장엘 잠시 들르는 틈에 개인택시 기사가 커트를 주문한 것이다. 운신에는 문제가 별로 없지만 전보다 너무 늙어 보여 걱정이라면서 커트하는 김에 염색까지 주문했지만 깎새는 난색을 표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눈 문제가 심각한데 염색이 눈에 좋다는 소리는 들어보질 못했으니 차라리 머리를 짧게 깎아 젊어 보이는 효과를 누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다행히 기사가 수긍해 커트만으로 낙착을 봤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병색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을 데리고 운동에 열을 올리는데도 후유증이 사라지질 않는다고 했다.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가벼이 여기고 넘어가지만 아프고 나서부터 "꼬추가 전혀 안 서"는 황당함은 당사자가 아닌 깎새가 자기 일인 양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뇌하수체가 호르몬 분비를 총괄하는 기관이라서 눈도 눈이지만 '꼬추'를 휘두르는 호르몬까지 담당하다 보니 그런 증상이 나온다는 건데 정작 아무렇지 않은 듯 굴어도 성욕으로 대변되는 남자다움, 아니 사람다움을 깡그리 몰수당한 박탈감을 누가 대신해 줄지 머리를 깎는 내내 깎새는 안타까웠다.
개인택시 기사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남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그는 꼭 오래된 친구처럼 깎새를 대했다. 그런 그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을 듯해 절망적이기까지 한 깎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