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여자는 밖으로 나돌지만 남자는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구들장만 박박 긁으면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후속편을 작작 쓰고 앉았다고 늘그막에 접어든 남자 고백을 들은 적 있다. 일부러라도 사람들 만나는 횟수가 잦아야 적적함을 덜고 생기가 돋는 법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라서 하던 일 내팽개치고 천날만날 흥청망청할 궁리가 아닌 한 일 년에 두 번, 명절 연휴 때만이라도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약속이라는 걸 잡을 필요가 있겠다.
요 몇 년 간은 자신을 옥죄는 고립감을 어떡하든 탈피하겠답시고 자기 쪽에서 먼저 새끼손가락 걸지는 못했다 형편이 형편인지라. 철 모르던 소싯적에야 밥 안 먹고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고 엄부럭깨나 떨었더랬지만 풍요로워야 할 중년기에 오히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들떴던 청춘의 기운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각성뿐 아니라 전에는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감마저 들어 상대적 박탈감이랄지 소외감 따위가 사치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마음의 틀이 바뀌니 사람은 안 보이고 실속 없는 행사치레로 시끌벅적한 동문회나 친목회는 아예 거들떠도 아니 보았다. 대신 설날, 추석 명절이 아니면 작당하지도 못하면서 각자가 그걸 또 부러 즐기는 조붓한 모임을 고대하는 맛으로 고립감 탈피를 꾀했던 게 또한 최근 몇 년이었다. 나이 들수록 운신은 영 더딜지언정 이왕 합석할 자리라면 무던하고 털털해야 중년 남성 소화 촉진에도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
올 명절 연휴에도 어김없이 만났다 설날 전날 저녁에. 고급진 회를 맛나게 먹으면서 중년 남자 셋이서 열심히 수다를 떨었겠다. 하지만 이번만은 만나기 전부터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미묘한 반감이 들었던 깎새였다. 자격지심이 어제오늘 느낌은 아닐 텐데 쉬 떨쳐 내지 못한다. 경제적 격차가 날로 벌어짐으로써 따라오는 감정적 괴리가 인지상정이라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참으로 오래된 사이라는 그 격의없고 소탈한 관계성 때문에라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 심경이 복잡해지는 까닭은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당파성이다. 달랑 세 명인데 무에 그리 복잡다단할까마는 가오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미달자가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계속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그 전망이 난망하다는 절망감이 옥죄고 말았음이라.
에픽테토스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 즉 판단, 의욕, 욕망, 혐오처럼 우리(마음)의 움직임에 의한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속하지만, 육체나 재산, 타인으로부터의 평판, 지위 등 우리의 움직임에 의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원래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며, 타인에게 간섭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은 취약하고 예속적이며 방해받고, 자신의 것이 아니다.(「엥케이리디온」 1장에서)
지위나 명예, 재산 따위 우리가 욕망을 품는 대개의 것은 우리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소리니 소용없는데도 욕망하는 짓을 경계하라고 강하게 귄고한 셈이다. 그런 차원이라면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 게 맞는다. 풍족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물질적 역량을 한껏 발휘해 흥겨우면 그게 그들만의 허심탄회인 셈이니까. 하지만 그 축에 끼지 못하는 자가 구태여 스스로를 의기소침으로 몰아가면서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꼴을 자청할 필요는 없다. 에픽테토스는 정말 행복한 인생을 누리기 위한 전제 조건을 잔인하지만 냉정하게 제시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