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졸업식 참석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던 지난 금요일, 대타로 김군이 점방을 지킬 시간에 그 손님 커트하러 왔었던 모양이다. 그는 주인장 행방을 물어본 뒤 김군에게 머리를 맡겼다. 그는 매달 한 번씩 꼬박꼬박 점방을 찾는 단골이다. 행색이랄지 말투가 좀 어수룩한 편이긴 하나 여느 손님과 다를 바 없다. 은근히 따지는 성향만 빼고.
그가 다음날인 토요일 재차 왔다. 깎새는 그가 전날 김군에게 머리를 깎였다는 사실을 그 손님한테 들었다. 그 말인즉슨 다시 깎아 달라는 A/S였다. 주문은 간단했다. 원래 깎던 대로 깎아 달라는 것. 김군이 잘못 깎은 건 아니었다. 짧은 스포츠 전형이라 해도 무방하리만치 스탠다드했다. 하지만 그 손님은 그런 스타일을 원하지 않는다. '좀더 바짝!'이라고 하면 상상이 가겠는가?
바리캉을 들다 말고 깎새가 되물었다.
- 주인 말고 다른 사람이 점방을 지키면 망설여지지 않습디까? 원래 깎아 주던 사람이 아니면 내 머리 맡기기가 주저되지 않나요?
수긍하는 눈치였다. 근데 왜?
- 주인 언제쯤 돌아오냐 물어보고 기다렸다 깎았으면 어땠을까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모르는 사람한테 깎을 수밖에 없다면 손님 스타일을 재차 삼차 강하게 설명해서 관철시키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그날따라 입에 착착 달라붙는 깎새 말발이었는지 대답이 궁한 손님.
- 제 말은 일부러 두 번 걸음 할 게 뭐 있냐는 겁니다. 안 그래도 할 일 천지삐까린데 서로서로 번거로워 좋을 게 없잖아요.
자기 스타일은 눈을 감고도 깎을 수 있을 만큼 손에 익은 깎새한테 머리를 맡기는 손님을 일러 단골이라 부른다. 하여 단골은 기다릴지언정 급하다고 함부로 깎새를 바꾸지 않는 법이다. 불가피하게 다른 손에 맡겼다면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한 책임을 손님 자신한테 묻는 편이다. 커트 요금을 두 번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측면에서 은근히 따지는 성향이 강한 그 손님은 문제의 금요일 점방을 찾았을 때 출타한 전후 사정을 들었다면 깎새가 복귀할 시간을 가늠해 재방문을 했어야 했다. 손님 두상을 그날 난생 처음 본 김군에게 자기 머리를 맡겼으면 백프로 만족스럽지는 못할지라도 어슷비슷한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김군을 닦아세웠어야 했고 그 최종 결과는 오롯이 손님이 책임을 져야 마땅했다. 다음날 쪼르르 달려와 제 스타일을 전혀 반영시키지 못했다고 김군을 타박할 게 아니고.
뒷손질을 끝냈더니 손님이,
- 요금 줄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길래,
- 됐심더.
더 받았다간 구설수 오르기 십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