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 능력자

by 김대일

인터뷰어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특히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묻자 한국학을 30년 이상 가르친 마크 피터슨 교수는 발음이라고 대뜸 대답한다. 특히 미국인 입장에서 된소리, 거센소리를 구분하기란 한국을 60년 이상 연구하고 한국어도 유창한 교수이지만 여전히 어려운가 보더라. "서울까지 갑시다"와 "서울까지 같이 갑시다"는 외국사람이 듣기에는 복잡하기 짝이 없긴 하겠더라.

다음으로 한국어가 이중언어라는 점이 어렵다고도 했다. 피터슨 교수 인터뷰를 그대로 옮겨 보겠다.



- 한국말 있고 한자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표현은 두 가지 방법 있잖아요. '쉽습니다'와 '간단簡單합니다', '고맙습니다'와 '감사感謝합니다'. 무엇이든지 두 가지 할 수가 있어요. 우리한테는 불리한 거예요. 어려우니까. 하나 배웠는데 다른 사람이 다른 거 하면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런데 한국사람한테 유리한 거예요. 이중언어하는 것이 뇌가 발달되는 거예요. 그거 한국사람이 똑똑하는 것의 일부입니다.


교수는 고유어와 한자어의 일 대 일 대응만 예를 들었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는 일 대 다 대응이 더 많다는 걸. 『국어의 풍경』(문학과지성사, 1999)이라는 고종석 저서를 들춰보면 그 일 대 다 대응에 관한 대목이 나와 있다. 김광해 교수라는 분이 저술한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현상』이라는 책을 들먹이면서 든 예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고유어 동사 '고치다'는 (건물을) 수리修理하다, (옷을) 수선修缮하다, (병을) 치료治療하다, (잘못을) 교정矯正하다, (정책이나 진로를) 수정修正·修整하다, (세법을) 개정改正하다, (제도를) 개혁改革하다, (기록을) 경정更正하다, (구조를) 개조改造·改組하다, (낡은 건축물을) 개수改修하다 같은 한자어 동사들에 대응한다. 구체적 문장들 속에서 이 한자어 동사들은 '고치다'로 대체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고치다'를 아무 한자어 동사로나 대체할 수는 없다.

(···)

그러니까 고유어 '고치다'는 그 대응 한자어들을 모두 의미적·통사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반면에, 대응 한자어들은 '고치다'의 여러 영역 가운데 일부분씩을 떼내어 자기 몫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한자어 유의어들은 '고치다'에 견주어 의미가 좁혀졌고(특수화했고), 통사적으로 선택 제약이 더 커지게 되었다. 선택 제약이 더 커졌다는 것은, '고치다'는 위에 등장한 어떤 목적어와도 마음대로 어울릴 수 있는 데 비해, 대응하는 한자어 동사들은 특별한 목적어들과만 어울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국어의 풍경』, 60쪽 인용)



반면 한자어 대 고유어가 일 대 다 대응을 보이는 예가 없지는 않다. 한자어 '착용하다'는 (옷을) '입다', (신을) '신다', (장갑을) '끼다', (모자나 안경을) '쓰다' 같은 고유어 동사들과 대응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예외적인 것이고, 한국어에서 일반적인 것은 고유어 대 한자어가 일 대 다 대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고종석은 결론을 짓는다.(『국어의 풍경』, 61~62쪽 참조)

뜻은 하난데 여러 표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훈련된 언어능력은 필시 대단하다. 늘상 그리 쓰는 우리야 그게 대단하다고 전혀 여기지 않지만. 한자어 습득이 언어능력에 왜 꼭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사족이라 그만하겠지만 어쨌든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와 한자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이중언어 능력자 한국인 뇌는 당연히 똑똑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니 이미 이중언어가 일상화되어 있는 마당에 곧 죽어도 영어 아니면 아니 되겠다는 고집이 왠지 부질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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