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몰아주기

by 김대일

깎새 단골 중에는 올해로 아흔 셋인, 허리가 ㄱ자로 굽어 보행기를 끌고 거리를 활보하는 상노인도 있다. 노인이 끌고 다니는 보행기에는 거리를 오가며 수집한 폐지며 재활용 깡통이 요령껏 매여 있다. '요령껏'이라는 단어를 굳이 단 까닭은 어떨 때는 보행기보다 부피가 훨씬 큰 것들이 그야말로 요령껏 착착 포개 잘도 끌고 다녀서다. 보기에는 위태해도 정작 당사자는 태연하다. '하루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긴' , 뭐 그런 반응이다.

허리가 굽었어도 보행기를 요령껏 끌고 다니는 노인이 신기해서 별스럽게 보는 게 아니다. 그 노인 특유의 유쾌함에 동해서다. 깎새는 노인이 그 거리에 등장하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저 멀리서 경쾌한 트로트 가락이 울려퍼지면 영락없이 그 노인이다. 폐지 줍는 노인에게서 흔히 풍기는 고단한 노년 따위와는 거리가 먼 유쾌함이 트로트 가락에 고스란히 담겨져 그 노인만의 고유한 자취로 잊지 않고 소환되는 것이다.

노인은 오래된 단골이다. 단골이라서 깎새도 폐지며 깡통을 모아 건넨다. 그게 어디냐며 고마워하는 노인을 향해 늘상 아쉽고 미안해하는 깎새다. 모으면 무게가 꽤 나가는 신문 다발은 점방 개업한 이래 매달 수거해 가는 다른 노인 몫이라 남겨 둔 까닭이겠다. 유쾌함에 더해 서글서글하기까지 한 노인은 사람이 신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그 사정을 쿨하게 받아넘긴다.

설날을 기점으로 큰 결정 하나를 내린 깎새다. 신문 다발도 노인에게 몰아주기로. 매상에 보탬도 없는 이에게 상납하듯 폐지를 닁큼닁큼 넘기는 건 단골에 대한 예의가 전혀 아닌 성싶다. 무엇보다 이 동네에서 만나면 유일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상노인을 향해 해줄 수 있는 배려라면 요령껏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깎새가 아흔 셋 먹을 무렵 그 노인처럼 유쾌하고 서글서글해지는 요령도 요령껏 배우고 싶은 꿍꿍이가 없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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