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살피는 곽탁타처럼

by 김대일

『강의』 (신영복 저, 돌베개, 2004) 맨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은 딸아이들 진로에 대해 아비로서, 부모로서 어떻게 관여할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만든다.



곽탁타의 본 이름이 무언지 알지 못한다. 곱사병을 앓아 허리를 굽히고 걸어다녔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낙타와 비슷한 데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탁타'라 불렀다. 탁타가 그 별명을 듣고 매우 좋은 이름이다, 내게 꼭 맞는 이름이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자기도 탁타라 하였다. 그의 고향은 풍악으로 장안 서쪽에 있었다. 탁타의 직업은 나무 심는 일이었다. 무릇 장안의 모든 권력자와 부자들이 관상수觀賞樹를 돌보게 하거나, 또는 과수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과수果樹를 돌보게 하려고 다투어 그를 불러 나무를 보살피게 하였다. 탁타가 심은 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죽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맺고 많이 열었다. 다른 식목자들이 탁타의 나무 심는 법을 엿보고 그대로 흉내 내어도 탁타와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펴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자라게 하거나 무성하게 할 수가 없다. 그 결실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일찍 열매 맺고 많이 열리게 할 수가 없다.

다른 식목자는 그렇지 않다. 뿌리는 접히게 하고 흙은 바꾼다. 흙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한다. 비록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 지나치고 그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사하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차츰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헤치는 일이며, 비록 나무를 염려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강의』, 514~515쪽)




자식들 미래를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가리킬 자격이 있는지 늘 갈등한다. 간섭할 만한 격을 갖춘 아비인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소리겠다. 한 녀석은 대학원을 진학하고 막내 녀석은 대학생이 된 마당에 고릿적이었으면 시집을 가 애까지 딸렸을 나이가 된 마당에 실은 간섭하고 싶어도 못할 지경이고 그들 영역을 슬쩍 침범할라 치면 그 후과가 대단치도 않아 피곤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자유방임으로 일관하면 부모된 자로서 의무를 방기하는 듯해 뒤통수가 따갑다. 그러니 아비는 자식들 문제와 직면하기 전에 자기부터 엄격하게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잔소리를 해댈 만큼 스스로 떳떳한가?'라고.



여지인 야반생기자 거취화이시지 급급연 유공기사기야

癘之人 夜半生基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其似己也

(언청이가 밤중에 그 자식을 낳고서는 급히 불을 비춰보았다. 서두른 까닭인즉 행여 자기를 닮지 않았을까 두려워서였다.)


『장자』에서 읽은 글입니다.

비통할이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 이것은 그대로 하나의 큼직한 양심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햇빛출판사, 1988, 231쪽)




그럼에도 원칙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지엽 말단으로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사는 동안 큰 맥락만은 끝내 부여잡아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각자의 인생관에 따를 것이니 여기서 따따부따할 계제가 아니다. 다만, 「종수곽탁타전」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추구하는 깎새의 가치관은 곽탁타가 나무를 보살피는 것과 일견 통한다.

그러고 보니 깎새는 요새 『장자』책을 다시 읽는 중이다. 물론 노자 『도덕경』과 세트로. 억지로 막는다고 해서 물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 양생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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