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분

by 김대일

'수유(須臾)'는 잠시, 매우 짧은 시간을 뜻하고 찰나(刹那)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단위는 경전이나 논서마다 달리 사용된다고 한다.

『구사론』에서는 120찰나가 1달찰나(怛刹那), 60달찰나가 1납박(臘縛, lava), 30납박이 1수유, 30수유가 1주야(晝夜)라고 했다.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서는 20념(念)이 1순(瞬)이고, 20순이 1탄지(彈脂), 20탄지가 1납박, 20납박이 1수유, 30수유가 1주야라고 했다. 두 논서의 계산에 따르면 1수유는 48분에 해당한다.(원불교대사전, 참고)

『장자강의』(동녘, 2015)를 쓴 전호근은 『장자』의 핵심 키워드인 소요유(逍遙遊)에 대해 이렇게 풀이했다.



명말청초의 사상가 방이지는 『통아(通雅)』에서 소요를 특이하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逍遙'는 옛날에는 소요捎搖, 수유須臾 등으로 썼다고 합니다. 이어서 천문가인 비담의 말을 인용하여 하루가 30수유라고 하고 있습니다. 수유는 하루의 30분의 1인 셈이지요. 하루 24시간은 1440분이니까 그것을 다시 30으로 나누면, 곧 48분이 수유, 곧 소요가 됩니다. 그렇다면 소요는 대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대상을 떠나지도 않으면서 48분의 거리를 두고 대상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위의 책, 90~91쪽)​



집착하지도 떠나지도 않을 일정한 거리를 지키면서 48분 동안 대상과 함께 유유자적할 수 있다면 소요유는 달성되는 것일까? 48분은 짧지 않지만 길지도 않다. 집착하지 않기는 어렵고 떨어져 있기는 더 어렵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는 모호한 상태, 호접몽(胡蝶夢)이야말로 소요유의 최고 경지일 테지.

짧지도 길지도 않은 48분을 유유자적하게 즐길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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