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이라는 뜻을 가진 '관계'에도 쌍방향적이지 않은 관계가 있다. 이만 작별을 고해야 할,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인연이 끊길 만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감지한 한쪽이 이를 타개해 보려는 움직임을 전개한다 한들 반대편에 서 있는 다른 한쪽이 냉담해하거나 화해의 손짓을 무시로 일관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감정이 상한 쪽에서 그런 식이면 관계 회복에 왜 혼자 안달복달이 나야 하는지 회의를 품다 못해 빈정까지 상하면 절연에 가속도는 더 붙는다. 한 이불 덮고 자던 부부조차 수틀리면 내일 당장 갈라서는 판에 그깟 '알고 지내는' 사이 따위야 격절隔絕의 이랑이 깊어지면 멀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사람은 평생에 한 친구면 충분하다. 둘은 많고 셋은 문제가 생긴다"고 한 누군가의 말은 관계의 부질없음에 뒤늦게 실망하지 말라는 경고로써 뼈를 때린다.
관계를 절연코자 하는 이는 태연함을 견지하라. '태연하게'란 단어를 특히 주목하기 바란다. 정다운 맛이 없고 차갑기까지 한 '냉정'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예사로운 '태연'. 너와 나를 잇던 관계의 끈은 끊어진 지 오래다. 네가 끊었는지 내가 끊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관계의 끈이 끊어졌다는 사실에 집중할 뿐. 하여 우리는 태연하게 갈라서면 그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태연한 절연에 명분을 제공한 문구로 특히 좋아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