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247)

by 김대일

갱년기

권말선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 언니들께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언제 오실까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머무르실까

두루 궁금했는데

막상 뵈니 초면이라 그런지

살짝 당황스럽군요

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친해지면 좋겠어요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

때때로 당신 탓을 하더라도

또 때로 당신을 외면하더라도

너무 서운해 마셔요

시나브로 생겨난

마음의 여백에 움찔 놀라

긴장과 적응을 반복하며

익숙해지려 애쓰는 중이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즐겁고 뜨겁고 아픈 시간 지나오며

나이 오십을 맞은 덕분인 듯해서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답니다

우습겠지만..., 정말이에요


이리 오셨으니

계시는 동안

모쪼록 편히 지내셔요

뜨거움도 아픔도 눈물도

뭉글뭉글 녹여가며

잘 지내보아요, 우리



(갱년기를 거치면서 마누라가 고약해졌다. 야멸차게 쏘아붙이는 말투엔 감정의 날이 잔뜩 서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움찔움찔 놀란다. 세게 쏘아붙이는 거야 참으라면 참겠으나 굳이 안 꺼내도 될 말까지 여과없이 내뱉을 땐 이런 구박까지 들을 정도로 내가 못난 놈이었던가 자괴감에 몸서리를 친다. 이를테면, 책을 보고 있으면 "돈 되는 책은 안 보고 허구헌날 구름 잡는 거나 디다보고 앉았"다거나 "생활비랍시고 꼴랑 몇 푼 쥐어주고 상전 노릇"이라며 힐난하는 따위 말이다.

점방 찾는 손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 안사람 갱년기 때도 그랬다면서 갱년기 땐 벌레보다 더 하찮은 게 남편이니 그러려니 넘어가라며 위로랍시고 거든다.

그래도 억울하다. 여자가 겪는 갱년기를 남자라고 겪지 말란 법 없고 깎새도 인생이 왜 이다지도 허무한지 우울해지는 빈도가 부쩍 늘었음에도 마누라나 딸아이들 앞에서 내색하기를 꺼린다. 속에서는 천불이 일지언정 참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쏟아낸다 한들 뒷맛 씁쓸해지는 건 똑같으니까. 쏟아낸 걸 주워담질 못하니 오히려 후회만 깊어지면 모를까.

같이 산 세월 썩 평탄치 않았던 까닭에 그간 쌓인 억하심정을 갱년기를 빌미로 마구 쏟아내는 거라면 죗값 치르는 셈 치고 온몸으로 안아받겠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멍은 깊어진다. 자주 쓰고 싶지 않지만 자괴감이 또 등장할 수밖에 없다. 가눌 길 없기에 견딜 수조차 없는 자괴감, 그게 큰 근심이다.)

작가의 이전글태연한 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