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반복은 차이의 반복

by 김대일

부르지도 않았는데 기억이란 놈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는 가만히 있는 속을 들쑤시곤 한다. 그 장난질엔 떠올리기만 해도 깎새 얼굴이 화끈거릴 만치 창피하고 볼썽사나운, 하여 행여 그때 과거사가 재현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낭패의 수렁으로 떠다밀 듯한 공포감으로 무장한 기억 속 인물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건이 일어났던 그 당시에는 전혀 어찌 해볼 엄두가 안 났던 시도, 즉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낙인 찍은 그 사람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십수 년 전, 사무실을 같이 쓰던 동료와 드잡이하던 기억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깎새는 일순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이왕 떠오른 기억이니 그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가 깎새 옆구리를 무르팍으로 가격하며 선빵을 날리는 장면에서 일시정지. 깎새가 기억 속 남자를 극도로 혐오케 한 결정적 계기가 됐던 바로 그 장면과 정면으로 직면하자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왜?"를 떠올렸고 기억 속 상황을 재조명하기에 이르렀다.

'왜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을까'로부터 '그는 왜 불만과 증오가 쌓였는가', '척을 져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따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왜?'에 묻히고 마는 깎새. 그러다가 날카로운 가윗날에 손가락이 베이고 나서야 기억의 늪에서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왜?'를 만족할 만한 결론은 물론 없었다. 없지만 그가 다시 보였다. 그와 우연히 조우한다면 서먹서먹할지언정 외면은 안 할 자신이 생겼다. 운이 좋아 말문을 튼다면 그 당시를 함께 복기할 수도 있겠고 해묵은 악연의 끈이 끊어지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속 기억에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허용하는 '열린 부분'이 있다는데 그 '열린'이란 표현은 필시 뇌과학적 수사일 테지만 박제되고 경직되었던 감정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이고 싶다. 하여 '다가올 미래'와 더불어 '지나간 과거' 속 기억은 현재를 윤활하는 역할로써 값질 터이다.




반복이라는 말 자체가 동일한 것의 되풀이를 뜻하는 것인데도 실제로 완전히 똑같은 것의 반복은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어떤 것이 반복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이것이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다르면서 또 같은지를 반사적으로 따진다. 다름 때문에 같음이 흥미로워진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숙명 위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완전히 동일한 것의 반복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내가 정확히 동일한 고백을 동일한 사람에게 했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스무 살 청춘이 아니고 이 카페는 예전과는 그 분위기가 달라져 있다. 그래서 '모든 반복은 차이의 반복'이다.(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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