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by 김대일

그날 마수걸이 손님은 단골이었다. 이 단골 특징은 7시 점방 문을 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 일찍 들른다는 것이다. 숱이 별로 없는데 스포츠형을 선호하는 노땅이었다. 한산한 이른 아침에 단골이 마수걸이 손님으로 이발의자에 앉아 있으면 바쁠 일 없고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요량으로 오롯이 그를 위해 작업에 집중했다. 빗질은 정성스럽고 바리캉질에는 영혼이 실리기 마련. 그렇게 무난하게 작업을 마친 줄 알았다.

점심 때 한술 뜨려는데 그 단골 후다닥 다시 들어왔다. 왼쪽 관자놀이 쪽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수정을 요구해왔다.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일단 이발의자에 다시 앉혔다. 마음에 안 드는 이유를 물어봤고 단골은 굳이 안 해도 될 표현을 씀으로써 깎새 분노 게이지를 치솟게 했다.

깎새가 깎새로서 이력을 쌓아 나가면서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직업적 자존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늘어나는 단골 수, 다른 하나는 이발을 마치긴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손님이 수정을 요구해오는 이른바 수정요구율이 극히 짜다는 것이다. 단골이 는다는 건 뭇사람들에게 충분히 통하는 기술이라는 의미요 수정요구율이 낮다는 것은 그 기술에 흠을 찾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리라. 단골 수가 정체되거나 준다면 장사를 이어갈지 말지를 결정할 중대한 생존의 큰 문제이지만 깎고 났더니 손님 컴플레인이 끊이지 않는다면 기술자로 그 바닥에서 빌붙고 살 동력을 상실한 셈이다. 하여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손님 수도 제고해야겠지만 손님 만족도도 동전의 양면처럼 늘 신경을 쓰는 깎새다. 하지만 매우 드물긴 하나 손님이 수정을 요구해오면 깎새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그를 향해 앙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날 마수걸이 손님이면서 단골이 수정을 요구해 오자 아침에 들였던 자신의 정성을 부정당했다는 억울함에 일단 부아부터 치밀었던 건 당연했다.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수없이 써내려가며 겨우 진정하려던 차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으로 깎새 불뚝성을 기어이 폭발시키고야 마는 단골.

- 찌 파묵은(쥐 파먹은) 맹키로 머리꼴이 와 그 모양이냐고 친구들이 그래쌓는데, 에이 참.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깎새가 시퍼렇게 날이 선 가위로 단골 왼쪽 관자머리를 향해 옆가위질을 하면서 일갈했다.

- 단골이신데다 마수걸이 손님이라 제가 얼마나 정성껏 깎아 드렸습니까? 근데 쥐 파먹었다니요. 모르는 분도 아닌데 그리 말씀하시니 정말 서운합니다.

참고 참아 그나마 순화해서 토로했지만 속내는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명대사를 단골 면상에다 날리고 싶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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