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2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깎새 점방 바로 맞은편 5층짜리 건물 2층에 새로 점포가 들어왔다. 속눈썹, 입술 시술을 전문으로 한다는 문구가 옅은 분홍빛이 도는 창문 시트지에 아로새겨져 있는 걸로 봐선 전신마사지 따위를 전문으로 하는 전 점포와 고객층이 얼추 비슷할 성싶은데 파리떼만 잡다가 나간 이력이 있어 날아간 파리떼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물론 남 걱정 할 바 아니지만.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그 건물 주인이 깎새 단골이다. 건물주가 이발하러 왔을 때 새로 들어온 임차 조건을 슬쩍 물었다. 주변 시세에 비해 유난히 싸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면적을 쪼개 다닥다닥 몰려 있는 1층 점포들과 한 개 층을 통으로 쓸 때와는 다르지 싶어 물었던 것이다. 헌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만큼 파격적이었다. 이보다 더 쌀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실평수 30평대 2층을 빌릴 때 그 주변 다른 건물이 3~4천만 원을 보증금으로 걸어도 월세 100만 원이 우스울 지경일 텐데 그 절반의 절반도 아니 들고 들어갈 수 있다면 건물주는 그야말로 구세주다.
건물 5층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 소유주이기도 한 건물주는 운영하는 회사가 잘 굴러가서인지 월세 그까이꺼 아쉬울 거 없다면서 저렴하다 못해 파격적으로 임차인을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아이템을 잘못 택해 손님 대신 파리떼만 쫓다가 진이 빠지지 않는 한 제발로 나가는 법이 없는 그 건물 임차인들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건물주 속사정이 또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알 게 뭔가. 세 든 사람 입장에서 월세만 싸면 그만이지.
그 건물 1층은 감자탕 점방, 코인 세탁방, 미용실로 라인업이 짜여져 있다. 미용실은 깎새 점방 면적의 삼분지 이를 육박하는데 월세는 거의 반값이다. 부담이 없으니 거기서만 10년 넘게 터를 잡은 터줏대감이다. 마주보고 있어서 미용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아침 10시를 한참 넘긴 느지막이 점방 문을 열었다가 저녁 7시가 채 안 되면 불이 꺼진다. 일요일은 무조건 쉬고 장기휴가도 가고 싶을 때 떠난다. 요금 6천 원짜리 손님 꾸역꾸역 받아내느라 깎새 입에서 단내가 사라지질 않는데 미용실은 늘 한산하다. 가끔 파마캡을 뒤집어쓴 여자 손님이 눈에 띄지만 북적거리는 날이 별로 없는 미용실이다. 그런데도 미용실 원장은 늘 유유자적이다. 무엇보다도 깎새 건물은 북향인데 저쪽은 남향이다. 햇볕 찬란한 데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더 여유로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건물주한테 "다음에 자리 비면 제가 들어갈까 봐요" 지나가는 말인 양 툭 던졌지만, 실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