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나팔꽃

by 김대일

큰딸이 추천해 딸아이들과 들렀던 장산역 부근 한 대폿집에 그만 꽂혀 버렸다. 가뜩이나 안주값 인플레가 심한 요즘에 '전 메뉴 9천 원 통일'은 혼술 즐기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데다 맛있기까지 하면 이런 금상첨화가 다시없다. 그보다 더 마음이 뺏긴 이유로 중년인 여자 주인장의 시크하지만 일관된 면면 때문이겠다. 혼술 손님이든 단체손님이든 누가 됐건 개의치 않는 정중동의 톤앤매너는 술상에 놓인 술과 안주에만 오로지 집중하려 하는 깎새 혼술 스타일과 통하는 구석이 있어 마음에 쏙 든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인 듯 철저하게 영역을 정하는 선긋기가 되레 묘한 신뢰감으로 승화되어 술맛은 배가가 되는 것이다.

깎새에게 한 주의 마감은 월요일이다. 주간에 쌓인 노고를 풀기 위해서 그날 저녁때만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유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를 늘 염원하는 깎새한테 그 대폿집은 새로운 아지트로 자리잡았다. 구독하는 유튜브 방송을 틀어놓고 9천 원짜리 생선구이와 9천 원짜리 동태탕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홀짝이는, 그 길어봐야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여유가 유일한 안식의 순간이다. 깎새를 아는 혹자는 그런 변모가 낯설지 모른다. '얘가 원래 그런 놈이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릴 이에게 이런 변명을 늘어놓으면 납득이 좀 될까?

혼자 마시는 술이 맛있을 리 없다. 원래 사람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속절없는 세월이 외톨이로 전락시켰을지는 몰라도 사람까지 멀리하진 않는다. 그런데 혼술을 즐기는 건 도대체 어인 까닭인가. 언제부터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아마 형편이 쭉정이가 된 무렵부터라는 짐작은 한다.

깎새는 천부적인 리스너listener였다. 대화 중엔 온 정신을 집중해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머릿속 기억칩에 오롯이 새겨뒀다가 행여 재회하는 자리에서 그가 일전에 주워섬겼던 것들을 재생해 냄으로써 지난 만남의 연장전인 양 윤기나게 분위기를 유도해 내는 능력은 참으로 탁월했다. 그러한 세심한 배려야말로 관계를 더욱 돈독해지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한편 다른 속셈도 기실 있다. 나만큼 너도 내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제가 들인 열성에 비해 돌아오는 상대방 반응이 시큰둥한 게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꽂아놔도 하나같이 똑같은 까닭에 차라리 목석에다 대고 씨부리지 왜 이런 푸대접을 견뎌야 하는지 지치다 못해 질려 버리고 말았던 게다.

사람들은 제 신변잡사만을 성마르게 늘어놓다가 깎새가 몇 마디 꺼낼라치면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는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퍼뜩 마시자"며 대화판을 일거에 리셋시켜 버린다. '참담'이란 한자는 보고 쓴대도 차라리 그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마큼 어렵다. 그 어려운 한자 단어는 '끔찍하고 절망적'이란 참담한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난 뒷끝은 늘 참담했다. '네 얘기를 들어줬으니 다음은 내 차례'가 처세의 기술로써는 깔끔하기 그지없는 상호작용일진대 지금껏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던 상대들 거개가 세상을 너무 이기적으로 사는 치들 같았다. 어쩌면 요령껏 맞춰 주면 그만인데도 괜히 과몰입하다 제풀에 실망한 깎새가 정서적으로 불구이든가.

혼자서 소주잔을 홀짝거리다 취기가 오르면 대학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학사주점은 <우리터>. 당시 흔하디 흔한 학사주점 중 한 곳일 뿐인 거기를 삼십 년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고 소환한 까닭은 교감과 연대의 장소성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이다. 조붓한 마호가니색 식탁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그 시절, 사람들과 허물없이 희노애락애오욕을 마음껏 공유했다. 제 딴에는 골머리 썩일 고민거리가 헤식은 농담과 악의 없는 빈정거림으로 희화화되긴 했어도 식어빠져 내팽개쳐진 안줏감 취급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취한 척 상대방 고민에 대한 대안이나 위로를 성심껏 건네는 것으로 술자리를 갈무리하는 낭만으로 충만했다. 그때가 정말 그립다.

지금은 자의든 타의든 고립을 택했다. 혼자서 빛바랜 추억의 꼬리나 붙들고 사는 일상이 퇴행적이긴 하다. 허나 다시는 리스너로만 살고 싶지 않다는 결심은 바뀌지 않을 게다. 인간은 졸아도 혼자 졸고 죽어도 혼자 죽는다는 말처럼 고립을 영영 고수할지언정.

아무튼 월요일 저녁 깎새 행방이 궁금한 이라면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장산나팔꽃>은 깎새의 월요일 저녁 아지트로 당분간 자리매김했으니 보고 싶으면 그쪽으로 오시라. 온다는 사람 안 막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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