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명예교수가 몇 년 전 쓴 칼럼에는 깎새처럼 1970년대생이 흥미로워할 만한 내용이 있다. 김은희, 김태호, 나영석, 박진영, 방시혁, 서태지, 싸이, 양현석, 연상호, 황동혁의 공통점이라 할 'X세대(1970년대생)'가 K컬처(한류)의 주역임을 밝힌 뒤 1975년생 작가인 김민희가 쓴 『다정한 개인주의자: K-컬처를 다진 조용한 실력자 X세대를 위하여』(메디치미디어, 2022)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TV 세대'로 불리는 1970년대생 X세대가 1990년대 '소비대중문화세대'를 선도했고 '상업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그들이 당당한 사업 프로젝트로 추진해 성공한 게 이른바 '한류'라고 했다. 더불어 그 한류의 주역인 X세대에 대한 김민희의 주장을 네 가지 명제로 압축했는데 제법 그럴싸하다.
첫째, X세대는 '두 자녀 시대'를 맞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개인주의 품성을 키워나간 세대다. 둘째, X세대는 '탈이념, 탈정치'라고 하는 세계사적 변화에 발맞춰 소비주의 문화, 취향 문화, 팬덤 문화와의 친화성을 보여준 세대다. 셋째, X세대는 균형감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권력과 연고주의에 무관심했기에 사회적 경쟁에서 권력과 연고주의에 집착한 586세대에 밀려났고, 그래서 더욱 문화 쪽으로 눈을 돌린 세대다. 넷째, X세대는 개발도상국의 감수성을 가진 86세대와 선진국 감수성을 가진 밀레니엄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서 서로 다른 세대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대다.(강준만, <강준만의 화이부동-'한류의 주역' X세대에 경의를 표한다>, 경향신문, 2022.06.08.)
분석 중에 고개를 갸우뚱할 대목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납득이 가는 편이다. 깎새가 1970년대생이라서 가재는 게 편이라는 식으로 편파적인 게 아니라 저자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할 만한 경험을 겪었던지라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일단 깎새(1972년생)와 남동생(1974년생)은 유년기 때 일찌감치 그들 방을 가졌다. 또, 비록 고모한테서 빌리긴 했어도 전축이란 걸 방에 구비해 놓고 그 고모에게 빌린 LP로 영화음악, 팝송, 클래식 따위 다채로운 음악 장르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키워 나갔다. 투쟁의 구호를 부르짖던 강단 센 86세대에 비해 트릿한 면이 없지 않은 탓에 정치적 편들기에는 회의적인 대신 자기만의 문화적 아성 구축에 더 주력했다는 점, 젊은 시절 쌓았던 문화적 경험을 토대로 그들 부모와 그들 자녀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문화적 이질감을 상쇄시키는 회색분자적 중재자 역할이 의외로 먹힌다는, 즉 윗 세대와 밀레니엄 세대 사이 낀 세대로서 중재자 역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히 네 번째 명제는 가슴에 무척 와닿는 것이다.
전축과 LP를 사춘기 조카에게 서슴없이 빌려줌으로써 문화적 수혜를 잔뜩 끼얹어 줬던 고모가 그제 깎새 점방을 찾았다. 고모 네 분 중에 셋째 고모인 그녀는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신데 한국으로 마실을 잠시 나오신 김에 큰조카 점방도 겸사겸사 찾으신 것이다. 전해들은 바와는 달리 강건하신 모습에 무척 안도했다. 멀리 계시지만 조카를 염려하는 마음이 한결같으신 고모. 헛자라지 않고 사람 구실하며 사는 데는 그분 덕이 크다. 행복과 안녕이 고모 곁에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고모를 떠올리면 그 시절 전축과 LP가 세트로 따라나오고 그 덕분에 얄팍하나마 문화적 감수성이란 걸 지니고 살 수 있었다. 한류의 주역은 바라지도 않고 메마르지 않은 사람으로 살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