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왔다. 휴가 마치고 자대 복귀를 앞두고 있댔다. 근데 주문이 좀 까다로웠다. 윗머리 길이를 3cm에 딱 맞춰 달라나. 머리 질을 살펴보니 원하는 대로 깎아준들 깎으나 안 깎으나 별 표가 안 날 성싶은, 아기 솜털처럼 다불다불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라서 두발 단정하다는 소리를 듣자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확 깎아 제끼는 게 맞지만 굳이 30cm 자를 들이대면서까지 원하는 대로 해줬다. 군인이 멋을 부려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병장 계급장을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깎다가 문득 궁금증이 도져 하필이면 왜 3cm냐고 물었다.
- 간부들이 부대원들 두발 단속 중인데 윗머리 3cm 이내면 봐준대서 깎기 싫은데 억지로 맞춘 겁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말년 병장의 심정을 모를 리 없다. 석 달 뒤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갈 몸인데 당장 머리를 길러도 시원찮을 판에 두발 단속이라니. 새로 부임하면 기선 제압을 구실로 잡도리부터 하려 드는 신입 간부들 성화가 아니꼽지만 옹졸하게 버티다 말년에 꼬이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밖에. 적당히 비위 맞춰 주다가 무탈하게 제대하는 게 상책이다.
- 난 군생활을 27개월 했지만 27개월이나 18개월이나 짬빱 먹는 시절은 다 고생이지. 우짜든동 몸 성히 제대하길 바라오.
- 27개월이나 하셨어요? 어휴, 저 같으면 지레 말라 죽었을 겁니다. 어떻게 견디셨어요?
아닌 게 아니라 2년이 채 안 되는 복무기간에 만만찮은 월급으로 목돈까지 챙겨 제대하는 요즘 군생활을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다 싶다. 27개월 복무기간을 꽉꽉 채운 뒤 사회로 복귀했더니 찐따 된 기분이었다. 27개월이 그리 긴 세월이 아니니 세상이 확 뒤집어졌을 리 만무한데도 강원도 오지에 처박혀 더덕이나 캐 먹다가 개화한 세상 속으로 막상 돌아와 보니 주눅부터 심하게 들어서 몇 달 동안은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도 못할 지경이었더랬다.
병장이 나가고 난 자리를 심상찮은 손님이 꿰차면서 한 편의 상황극은 완성됐다. 늙수그레한 손님은 경북 영천에서 은퇴 생활을 즐긴다고 했다. 경북 영천이라고 하니 3사관학교가 떠올랐고 거기서 개고생했던 기억이 덩달아 떠올라 그걸 밑천 삼아 씩둑거렸더니 고맙게도 호응을 해주는 손님. 3사관학교와는 깎새가 언성시러운 인연이 좀 있다. 학군단 후보생 시절, 3~4학년 연거푸 여름만 되었다 하면 3사관학교로 가 병영훈련 받았는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덥다는 영천에서 그것도 여름 한 달을 꼬박 훈련으로 났으니 영천 그쪽으로는 오줌도 누기 싫을 정도다.
염색약을 다 바르고도 이왕 터진 입 계속 놀릴 양으로 제대 석 달 앞둔 군인까지 아낌없이 도마 위에 올렸더니 대뜸 이런다.
- 18개월? 27개월? 나는 36개월 했시다. 흥, 어디서 감히.
복무 개월 수가 깡패인 게 남자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