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기를 거부하는 춤의 달인을 춤추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치사상사 연구자이면서 독창적 문체와 예리한 사유를 장착한 칼럼리스트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는 사람의 행동을 바꿀 방법으로 강제, 계몽, 인센티브 중 하나로 꼽았다.
권력을 사용해서 특정 행동을 억지로 하게 만드는 것이 강제다. 의식화를 통해서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게끔 하는 것이 계몽이다. 특정 행동을 부추기는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 인센티브다. 춤추기를 거부하는 춤의 달인한테 적용시켜 볼까. 좋은 말 할 때 나가서 춤추라고 위협한다고 춤을 추겠는가. 댄스는 현대판 삼강오륜에 속한다고 가스라이팅을 해볼까. 이도 저도 아니니 춤을 추면 1억 원을 주겠다고 해볼까.
강제든 계몽이든 인센티브든 어떤 조처에 대한 대응으로는 저항, 탈퇴, 감내가 있다. "나가서 춤을 추라고요? 웃기지 마세요."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저항'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에 응할 필요를 못 느끼겠군요. 꺼지겠습니다!" 이것이 '탈퇴'다. "에잇, 까짓 춤 한번 춰주고 말지"라고 결심하면 그것은 '감내'다.
김영민 교수는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시킨다. 한국 사회는 꾸준히 강제에 의존해왔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형무소, 크고 작은 벌칙, 횡행했던 고문과 구타는 모두 한국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해온 강제를 증명한다. 강제에 의존한다는 것은 형벌과 같은 조치를 통해 사람들의 행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꾸준히 계몽에 의존해왔다. 너도 나도 외쳐 왔다. 정신 차려! 머리에 힘줘! 운동권의 의식화 프로젝트는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계몽 프로젝트 중 하나다. 계몽에 의존한다는 것은, 의식을 바꾸어서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깨치지 못해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피계몽자에 대한 계몽자의 도덕적 우위를 전제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꾸준히 인센티브에 의존해왔다. 다양한 장려금, 보너스, 포상이 모두 인센티브다. 인구 감소를 억지하기 위해서 수백조 원의 출산 장려 예산을 써왔다는 최근 언론 보도가 그 예다. 인센티브 관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잘못하거나 무지몽매해서 도달한 결과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가 출현했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특징들, 이를테면 저출산, 부동산 투기, 입시 과열, 수도권 집중이 걱정인가? 그것들 역시 사람들이 잘못하거나 무지몽매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나름) 합리적 행동이 낳은 현상이다.
저출산이든, 부동산 투기든, 입시 과열이든, 수도권 집중이든 다수가 그렇게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느꼈기에, 그렇게 사는 한국인이 탄생했고, 그런 한국인이 다수가 되었을 때 그런 한국 사회가 출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과 다르게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느껴질 때 비로소 미래의 한국인이 출현하고, 그런 한국인이 다수가 될 때 한국의 새로운 미래가 출현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가는 강제나 계몽보다는 합리성의 조건을 바꾸는 데 더 부심해야 한다는 게 글의 요지다.
글을 다 읽고 나서 요즘 한국 사회를 톺아본다. 근래 보도된 출산율 증가 통계는 유의미한 것일까? 대통령이 주도하는 부동산 정상화는 성공할까? AI를 기반으로 한 교육 혁신을 통해 입시 제도가 개편될까? 이른바 5극 3특 체제를 구축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지방 분권화가 이루어질까? 희망적인 건 지금의 개혁가는 지난 시절 강제나 계몽에 의존하기보다는 합리성의 조건을 바꾸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실용주의자라고 천명했으니까.
* 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 어크로스, 2025, 242~248쪽을 나름 간추린 뒤 사족을 달았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