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깎새에게 직면할 최악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은 무엇일까. 한때 지하철역에 가면 흔히 보이던 즉석사진 찍는 부스 같은 공간이 동네 곳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 들어가 앉아 주문만 하면 그 사람 입맛에 맞는 스타일로 꾸며주는, AI가 결합된 가위손이 이발을 한다. 혹은 사람 종업원 대신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손님을 맞고 이발을 하고 머리까지 감겨주는 점방이 생길 날이 머지않아 도래하지 않을까.
AI 이발사는 줘야 할 인건비랄 게 없어 요금이 저렴해질 뿐만 아니라 가위손 부스나 로봇 점방이 동네 편의점처럼 우후죽순 널려 있어 접근성까지 용이할 테니 비싸고 더딘 사람 깎새를 찾는 게 어리석은 짓이 될 게다. 결국 사람 깎새는 그 직업적 수명을 다해 퇴물 취급을 받으며 쓸쓸하게 시대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만다. 가진 건 이발 기술뿐인 깎새는 열등시민으로 전락해 거리를 헤매고 다닐지 모르고.
정부는 'AI 기본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리는 보편적 인프라로 삼아 의료, 교육, 복지 등에서의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AI 생산성을 바탕으로 기본소득과 서비스를 제공해 취약계층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기도 하고.
근자에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이주기구(IOM),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식량계획(WFP), 유엔개발계획(UNDP) 등 주요 6개 기구와 의향서를 맺었다고 밝혔다. 유엔 AI 허브가 한국에 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유엔 기구는 미국의 유엔 기구 탈퇴로 인한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 게다가 AI 도입에 따른 내부 역량을 하나로 집중시키지 못해 각 기구들이 따로따로 노는 실정이란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AI 거대 강국 사이의 거친 헤게모니 다툼 속에서 실행력 있고 보편적이면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제3의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유엔 허브의 한국 선택은 뜻깊다. 전문가가 밝히는 분석 중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규범 정의 능력이다. 유엔 허브를 유치한 한국은 AI 윤리, AI 거버넌스의 언어를 선점하고 그 개념을 정의하는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박태웅). 하여 패권적이고 무책임한 빅테크 AI가 아닌 보편적이고 공존할 수 있는 그야말로 'AI는 공공지능'(차지호 의원)이라는 명제를 실현할 기회인 것이다.
이발 기술을 AI에게 빼앗긴 깎새는 과연 최악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